🔍베르씨빌라쥬 조향사, 캔들 공예가 백희영 대표님 | 2024 광화문 마켓 | 서촌에서 만나는 슈톨렌 ▪️ 절기 이야기: 동짓달 기나긴 밤을
▪️ 인터뷰: 베르씨빌라쥬 조향사, 캔들 공예가 백희영 대표님
▪️ 서촌의 시공간: 서촌 문화 | 긴 겨울밤, 광화문에서 만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마켓
서촌 가게 | 겨울 디저트, 서촌에서 만나는 슈톨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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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안녕하세요, 여러분.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2주 만에 만나지만, 어쩐지 오늘은 먼 길을 지나 긴 밤을 통과해 마침내 마주한 것만 같습니다. 익숙하게 넘긴 수많은 일상이 한밤의 끝에서 결국 파쇄되는 것인가, 올해 마지막 인사를 앞두고 요란스럽게 자맥질하던 마음이 비로소 단단한 땅에 닿은 것 같습니다. 오늘은 2024년의 마지막 레터이자,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지(冬至)를 전해 드립니다. 동지는 일 년 중 가장 밤이 긴 날입니다. 동지고사, 동지팥죽처럼 유난히 많은 동지의 풍속은 이 긴긴 밤을 무사히 보내길 바랐던 마음이 담긴 것이었을까요.
더 서촌은 가장 어두운 겨울밤을 생각하며 빛을 떠올렸습니다. 빛은 어둠으로 증명할 수 있는 가장 명백한 존재이니까요. 동지는 가장 밤이 긴 날이지만, 곧이어 낮이 길어지는 전환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남은 한 해를 손으로 굴리며 빛과 향으로 일과 삶을 채우는 베르씨빌라쥬의 대표이자 조향사, 캔들 공예가인 백희영 님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은은한 온기와 향기로 선명한 삶을 조향하는 희영 님의 이야기로 기나긴 밤의 하루를 시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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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초의 불빛이 정말 좋았어요. 불빛이 닿는 공간만큼은 오롯이 내 공간이고, 불빛을 보면 하루 중 그 시간만큼은 온전히 치유되는 느낌이었거든요.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동료와 취미로 향초 공예를 시작했는데, 그땐 초를 켜두고 고요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정말 필요했던 것 같아요. 6년 동안 회사에서 여성복 디자이너로 일하며 정말 치열하게 살았거든요. 아무리 해도 보상받는 느낌 없이 자꾸만 나를 소진하는 것만 같았달까요.
그래서 6년간의 회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여행을 다녀왔어요. 돌아오니 생각도 정리되고 돈도 다 정리되더라고요.(웃음) 근데 그렇게 다 정리가 되니까 그제야 뭔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회사가 아닌 저만의 방식으로도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렇게 집에서 테이블 하나 놓고 시작한 게 어느덧 10년이 되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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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를 업으로 삼기 위해 필요했던 자기 확신에 관해 물어보셨는데, 사실 확신은 없었어요. 다만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고민하기보다는 실행부터 했던 거죠. 해보고 아님 말고, 그런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했는데 막상 해보니 저랑 정말 잘 맞는 일이고, 일하며 생활하는 저의 일상이 제가 추구하는 삶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각을 많이 사용하는 일이다 보니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짧은 편인데 제 속도에 맞춰서 일할 수 있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상상하던 모양과 향을 실제로 구현했을 때 쾌감도 크고요. 제 안의 창작 욕구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게 좋았죠. 작업 자체가 어렵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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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일할 때는 저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좀 이기적인 사람이었죠. 그땐 다른 사람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일만으로도 제가 소진되는 느낌이라 출산과 육아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근데 이 일을 하면서 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주변을 보게 되고, 미래도 그려보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지금은 아이가 둘이나 있어요. 제 안의 깊게 파인 어떤 부분이 차곡차곡 채워진 느낌이에요. 충분히, 충분히 보상받은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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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서촌 한옥에서 살고 계셨던 지인을 통해 서촌을 알게 됐어요. 타이밍이 잘 맞아서 이곳으로 이사도 하고 집 바로 옆 공간에서 공방을 열 수 있었죠. 예전에는 비 오면 물을 퍼내야 할 정도로 낡은 곳에 있었어요. 공간에 정이 드니까 그런 것도 불편한 줄 모르고 살았네요. 점점 성장하는 재미도 있었고요. 다시 생각해도 저는 참 운이 좋은 것 같아요.
가게 이름은 동생과 프랑스 파리 여행을 갔을 때 함께 갔던 동네 이름을 그대로 붙인 거예요.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라서요. 말하자면 파리에 갔는데, 가게 이름이 ‘서촌’인 곳을 본 느낌인 거죠. 그래서 손님이 ‘베르씨빌리지’라고 하시면 굳이 ‘베르씨빌라쥬’라고 꼭 정정해 드려요.(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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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향을 찾고,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저 자신을 많이 환기하려고 해요. 환기하기 좋은 방법은 산책이죠. 서촌이 산책하기 정말 좋은 동네잖아요. 강아지랑 산책하면서 환기도 하고 영감도 많이 받아요. 저는 항상 향기를 채집한다고 표현해요. 걸어 다니며 맡는 냄새나 자연물을 보면서 순간 떠오른 생각을 적어서 기억과 기록을 토대로, 제품으로 구현할 수 있는지 적용하고 찾아보는 편이에요. 일당백을 해야 하는 1인 사업자가 쉬면서도 일하는 방법인 거죠.
서촌은 2월부터 5월까지 동네에 꽃이 지천으로 펴요. 그럼 꽃 냄새도 맡고 잎사귀도 만져보면서 원료랑 배합해 봐요. 요즘은 향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시기잖아요. 그래서 낙엽의 색감이나 빛의 조도, 차가운 공기의 느낌 같이 다른 감각으로 많이 연결해 봐요. 상상으로 그리던 향을 실제로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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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공방 클래스를 하면서 매일 다른 분들과 만나고 헤어지는 게 일상이죠. 그런데 '시절 인연'이라는 말, 저한테는 되게 좋은 말인 것 같아요. 가까웠던 친구들이 점점 멀어지고, 소중했던 인연이 흩어지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그게 의미 없는 건 아니니까요. 지금 친하게 지내는 사람도 언젠가는 멀어지고, 평생 모르던 인연이 어느새 제 삶에 깊이 각인될 수 있죠. 향기처럼 흘러가다 불현듯, 은은히 느껴지는 것처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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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도 사람처럼 직접 겪어봐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공기에 흩날리는 향기와 살냄새에 섞여 나는 향기는 전혀 다르거든요. 너무 진하고 낯선 향기도 막상 뿌린 후에 시간을 두고 느끼면 감상이 확 달라지는 경험, 아마 해보셨을 거예요. 겪어보지 않았는데 편견을 갖고 있던 사람도 막상 만나서 얘기해 보면 괜찮은 경우가 있잖아요. 향기도, 인연도 두려움 없이 많이 겪어보고 느껴봐야 그가 가진 진정한 향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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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잔잔하게 살고 싶었어요. 은은하게 지나가는 베이스 노트처럼요. 무난한 베이스 노트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강렬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는 탑 노트 향도 좋아했죠. 제가 갖지 못한 향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저, 내년에 마흔이 돼요. 저는 40대가 너무 궁금해요. 20대보다 30대가 재미있었으니까, 40대는 또 얼마나 즐거운 일이 많을까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어요. 40대에는 제게 스며든 베이스 노트 같은 잔잔한 향기 위에 상쾌하면서 강렬하고, 주위 분들에게 제 인상을 남길 수 있는 탑 노트처럼 살고 싶어요. 처음 향초를 접한 것도 서촌에 오게 된 것도 주변 사람들 덕분이었는데, 이제는 주변에 저의 좋은 향과 삶을 남기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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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따라 불렀던 옛날 시트콤 '뉴논스톱' 오프닝 노래 가사에 오늘은 누구한테 어떤 일이 생길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런 내용이 있었거든요. 가사처럼 저는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즐거워요. 계획도 잘 세우지 않고요.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아도 우연히 삶이 전환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저는 그 순간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향초도, 서촌도 그렇게 인연이 되었으니까요. 그저 하루를 기대하며 채워나가는 것, 그게 제가 사는 이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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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12월이 되니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마지막에 다다를 수 있을까, 싶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갑자기 대우주가 궁금하거나 1년 내 게을렀던 독자 양심에 책무감이 들어 그런 것은 아니고요. 하루를 한 달 살듯 시간을 꼭꼭 씹어서 온 힘을 다해 살아낸 듯싶은데 또 목구멍에 훌렁훌렁 쌀알 넘어가듯 시간이 지나갈 때 문득, 다 무슨 소용일까 싶어서요.
우리는 지금도 소멸의 상태로 질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원할 것처럼 하릴없이 사랑에 빠지고 부박한 욕망을 숨기지 못하고 춘몽 같은 영예를 탐합니다. 어째서일까. 지구는 늘 수산스럽게 뒤끓어서, 이곳이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고 귀하다고 말하는 우주적 관점에 의지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소진했을 때 비로소 용기를 얻는 삶, 우연히 닿은 인연의 끈으로 일상이 전환되는 삶도 광막한 코스모스의 푸른 점, 이곳이 아니면 존재할 수 없겠죠. 가장 더울 때 끝나는 여름과 가장 어두울 때 전환되는 빛의 길이처럼 모순과 반전이 이곳의 삶이자 우리를 이루는 그 자체인가 봅니다. 겨울 한복판에서 사랑으로 또다시 서로를 지켜낸 모두에게 여름의 마지막 인사를 떠올리며, 올해 마지막 문장을 남깁니다. 멈출 수 없는 사랑으로 다시 함께 살아내자 말하는 이상하게 아름다운 우리의 이야기.
2024년 따뜻하게 배웅하고, 내년에 만나요. 더 서촌의 2025년은 분명 더 좋을 거예요.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내 안에 꺼지지 않는 여름을 발견했다.
- 알베르 카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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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공연 | 긴 겨울밤, 광화문에서 만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 마켓
희망의 빛과 설렘으로 가득한 크리스마스 마켓이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올해로 3회째를 맞는 이번 마켓은 서울 야간 관광을 활성화하고 지역 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특별한 행사로, 100여 개의 소상공인이 참여해 크리스마스 시즌 소품, 정성 어린 수공예품, 그리고 겨울밤을 녹여줄 따뜻한 먹거리를 선보인다고 하네요.
연말연시의 설렘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빛과 추억을 만들 수 있는 <2024 광화문 마켓>에서 동지의 깊이와 크리스마스의 따뜻함이 어우러진 겨울을 만끽해 보세요!
🎅🏻 2024 광화문 마켓
📍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175 광화문광장
📅 2024년 12월 13일 ~ 2025년 1월 5일 🕟 17:30~21:30 (월~목) / 18:00~22:00 (금~일)
사진 출처 | 서울관광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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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가게 | 겨울 디저트, 서촌에서 만나는 슈톨렌
동지에 팥죽을 나누며 어둠을 물리치고 새로운 기운을 맞이하던 우리의 전통처럼, 유럽에서는 슈톨렌(Stollen)이 긴 겨울밤을 달콤함으로 어루만졌습니다. 독일에서 시작된 슈톨렌은 과일과 견과류, 향신료를 듬뿍 넣어 정성스레 구워내고, 오랜 시간 숙성시켜 먹는 크리스마스 빵이랍니다. 하얀 슈가 파우더로 덮인 모습은 눈 덮인 겨울 풍경을 떠올리게 하고, 그 속에 담긴 풍성한 재료들은 한 해를 풍요롭게 마무리하며 소중한 이들에게 축복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선물로 알려져있죠.
서촌의 베이커리에서도 각자의 개성과 정성을 담아 구워낸 슈톨렌으로 겨울을 채우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와 동지가 어우러진 이 계절, 촛불을 켜고 슈톨렌의 달콤한 풍미를 천천히 음미하며 한 해의 고요한 마무리를 느껴보세요.
📍 마사마드레 | 누하동 1-7
📍 쁘띠통 | 통의동 25-16
📍 스코프 | 누하동 90-2
📍 이도림 | 통인동 118-2
📍 인왕산 초소책방 더숲 | 인왕산로 172
사진 출처 | @deosup_chosochaekba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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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chon 23호는 1월 5일 소한(小寒)에
님을 찾아갑니다.
동지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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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밤
김태운
어쩌면 지구가 생길 때쯤 우주에 있던 막막한 밤 하나 휘말려 지구에 살게 되었을지도 몰라
지구에서 가장 긴 밤이었겠지 밤 밖에 몰랐던 밤일 테니까 그리고 밤은 사라지지 않았어 여전히 밤 중에 가장 긴 밤으로 남아
지구 생명들에게 우주의 이야기를 꿈으로 전하며 낮이 길어지는 날들과 밤이 길어지는 날들 사이 딱 하루로 끼어
가장 오래된 밤을 지날 때 어떤 것을 매듭짓고 어떤 것을 새로이 준비해야 할지 한 번쯤 까무룩 떠올려 보라고
생각의 여백을 준다 자신을 꺾어 지나면 머지않아 새해라고 일러 주는 것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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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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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휴먼 콘텐츠 <더 서촌>
살고 싶은 로컬, 살고 싶은 삶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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