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뜨개 작가 양지현 | 오프비트 스테이지 #02 Denis Sungho 《GRACE》 | 서촌 뮤직바 ▪️ 절기 이야기: 나무에 눈이 맺히면
▪️ 인터뷰: 손뜨개 작가 양지현 님
▪️ 서촌의 시공간: 서촌 공연 | 오프비트 | OFF-BEAT STAGE #02 : Denis Sungho 《GRACE》
서촌 가게 | 언제 가도 좋지만 이맘때 가면 더 좋잖아요 | 서촌 뮤직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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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일년 중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는 절기, 대설(大雪)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에게는 겨울의 포근함을, 대지와 작물에게는 추운 겨울을 견딜 포근한 이불이 되어주는 하얗고 투명한 결정체를 바라보며, 자연은 그 모든 존재의 역활을 다하며, 무엇 하나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더 서촌 21호에서는 이러한 겨울의 따스함을 손끝으로 전하는 손뜨개 작가 양지현 님을 만나봅니다. 로봇을 설계하던 엔지니어에서 손뜨개 작가로, 그리고 서촌의 이웃으로. 지현 님은 현재 한 아이의 엄마이자 손뜨개 전문 브랜드 ‘뜨앤’의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서촌에서는 ‘무릇’이라는 독창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차갑고 정밀할 것만 같은 로봇 엔지니어의 과거와는 달리, 색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며 따뜻한 감성을 실 한 올 한 올에 담아내며 살아가는 지현 님을 지금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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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올 한올,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의 시작
뜨개질을 시작한 건 15년 전쯤이에요. 그 당시에는 회사에서 개발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밤샘 작업도 잦고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날들이었죠. 마음의 여유를 찾고 싶어 취미를 하나둘 찾기 시작하다 우연히 ‘텐바이텐’이라는 사이트를 알게 됐어요. 돌도장 만들기, 나무 깎기 등 다양한 취미를 접했지만 유독 제 마음에 자리 잡은 건 뜨개질이었어요.
실 한 올 한 올을 엮어가며 모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정말 흥미롭고 즐겁더라고요. 당시에는 유튜브 같은 자료가 많지 않아 동대문 시장에서 실을 사오고, 책을 펼쳐놓고 독학으로 배웠어요. 그렇게 시작된 뜨개질은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에게 마음의 쉼표 같은 존재로 남아 있어요. 로봇을 만드는 엔지니어로 시작해 원리를 가르치는 선생님까지, 다양한 직업을 거쳐 지금의 제가 되었지만, 뜨개질만큼은 늘 놓지 않았어요. 한결같이 저를 위로해주고, 고요한 집중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주는 매개체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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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엮어가는 색의 감각
뜨개질은 결국 실에서 시작되잖아요. 어떤 실을 고르고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저는 실을 고를 때 우선적으로 도안에 맞는 굵기를 고려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색감이에요. 이 작품이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될 수 있을지, 또 제 스타일을 얼마나 잘 담아낼 수 있을지를 색감을 통해 고민하며 실을 골라요.
특히 여러 실을 섞어 새로운 색감과 질감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좋아해요. 이 과정이 마치 색으로 이야기를 엮는 것 같아요. 그런데 아무리 다양한 실을 찾아도 마음에 쏙 드는 색감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직접 실을 만들어요. 스피닝이라는 작업인데, 물레를 밟아 양모를 꼬아내며 실을 뽑는 과정이에요. 손과 발의 움직임이 일정하게 맞아야만 실이 끊기지 않고 원하는 두께와 질감으로 나와요. 그 과정 속에서 제 마음도 자연스레 정리되는 것 같아 실을 만드는 작업 또한 저에게 큰 즐거움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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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뜨개로 배우는 삶의 철학
뜨개질을 하다 보면 실이 끊어지거나 코를 잘못 뜨는 일이 생기곤 해요.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도 이런 실수는 피할 수 없죠. 그럴 때마다 저는 다시 풀어서 처음부터 엮어나가는 걸 택해요. 예전에는 이런 과정을 정말 싫어했어요. 실을 풀고 매듭을 다시 지으며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죠. 하지만 이제는 그 과정조차 즐기게 되었어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다시 푸는 작업도, 제대로 만들어내는 완성의 기쁨도, 그 모든 게 뜨개질의 일부더라고요. 예전에는 귀찮아서 팔 없는 옷을 그냥 걸어두고 끝내지 않은 작업들이 참 많았는데 그걸 놔두는 대신, 오늘은 소매를 다 해치워보자고 마음먹고 나니, 정말 큰 해방감과 기쁨이 찾아오더라고요.
이처럼 뜨개질을 하며 엮이는 모든 순간이 인생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이 끊어져도 다시 이어붙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풀어 다시 시작하면서, 결국 완성에 가까워지듯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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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 자리 잡은 건 참 우연이었어요. 남편의 직장이 경복궁 근처라 자연스레 이곳으로 오게 되었죠. 막상 와보니 서촌은 너무나 매력적인 동네였어요. 골목마다 피어 있는 꽃들, 곳곳에 자리한 작은 화분들, 소소하지만 진정성있는 풍경들과 이웃들에게 사로잡혀 7년 째 서촌에서 살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어요. 사실 아직 작업실을 따로 두지는 못했어요. 육아와 일상이 얽혀 있다 보니 공방을 운영하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언젠가 아이가 좀 더 자라고 나면, 제가 몰입할 수 있는 작업실을 꾸리는 게 작은 꿈 중 하나예요.
대신, 서촌에서 소소하게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요. 필운동에 위치한 꽃집, 숙인화가에서 소수인원으로 수업을 열고 있고, 에코 생협에서도 뜨개질 소모임을 운영 중이에요. 제가 진행하는 수업은 특별히 '완성'을 목표로 두고 있어요. 참여자분들이 옷 도안을 골라오면, 그 도안을 끝까지 뜰 수 있도록 돕는 거예요. 아직 완성을 못하신 분은 없었어요. 과정이 천천히 흘러도, 본인 손끝에서 완성되는 기쁨을 느끼게 돕고 싶어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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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손끝으로 엮는 서촌의 사계(四季)
서촌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하게 된 ‘무릇’이라는 프로젝트도 제게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매난국죽(梅蘭菊竹)의 자음을 딴 이름으로, 계절을 소재로 마음에 평화를 주는 직물을 만들어 보는 원데이 클래스로 진행하고 있어요. 인왕산의 풍경이나 비 온 뒤 피어난 풀 같은 자연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작은 작품들을 실로 엮어내는데, 이 작업을 통해 저는 창작이란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걸 배웠어요. 나의 이웃, 동네를 주제로 작은 실타래에서도 무궁무진한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용기를 얻어 앞으로 지속적으로 클래스를 만들어 볼 예정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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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느림으로 빚어내는 온기
겨울은 모든 게 천천히 흐르는 계절이잖아요. 뜨개질도 한 올 한 올 쌓아가는 작업이라 그 느림이 참 잘 어울려요. 큰 눈이 내린 뒤엔 세상이 잠시 덮이고 고요해지듯이, 뜨개질을 하는 동안 저도 제 안의 걱정을 잠깐 내려놓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요즘 다들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잖아요. 그래서 겨울이 잠깐이라도 그런 고요함과 따뜻함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따뜻함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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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왜 살까요? 일단 재밌어요. 이제 제 인생 자체도 저는 뜨개질이라고 생각해요. 뜨개질을 하다 보면 코를 잘못 꿰어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때도 있고, 다시 풀고 고치는 과정에서 속상한 마음도 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결국엔 그 모든 과정이 엮이고 엮여 작품이 완성되죠.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나중에 돌아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큰 그림으로 완성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하지만 너무 먼 미래를 보려 하면 막막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하루하루를 즐기며 살고 싶어요. 길을 걷다가 예쁜 땅을 보면 그걸로도 재미있고, 공기가 맑은 날이면 그 맑음에 감사하고, 커피 한 잔이 맛있으면 그 맛을 즐겨요. 그런 작은 즐거움들이 모여 결국 제 삶을 엮어간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뜨개질을 하며 따뜻한 햇빛이 드는 창가에 앉아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오늘 정말 잘 살았다." 그렇게, 저는 매일매일 제 삶의 실타래를 엮어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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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자연의 결을 실로 엮어내며 겨울에 온기를 전하는 지현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얼어 있던 마음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듯합니다. 실 한 올 한 올을 정직하게 엮어가다 보면, 손끝에서 단단한 모양새가 완성되듯이, 모두의 마음이 모여 우리가 바라는 일상을 되찾길 희망해봅니다. 코 끝 시린 추위에도 손끝에 전해지는 작은 따스함이 마음을 채우듯, 위로와 희망을 전하며, 더 서촌 스물한 번째 이야기를 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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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공연 | 오프비트 | OFF-BEAT STAGE #02 : Denis Sungho 《GRACE》
오늘은 오프비트 스튜디오의 최근우 사진작가와 드니성호 기타연주가가 함께 준비한 연말 공연 OFF-BEAT STAGE #02 : Denis Sungho 《GRACE》 를 소개해 드립니다. 포근하게 쌓인 눈 사이로 빠지듯 아름다운 선율 사이로 흐르는 시간을 맞이해 보세요.
드니성호는 그의 삶 속 소중한 순간들을 악보에 고요히 수놓습니다. 오프비트는 우리 삶의 예기치 않은 특별한 순간들을 기꺼이 담아냅니다. 드니성호의 사진을 수년간 담아온 오프비트에서, 그의 새 앨범 <GRACE>와 대표곡들을 선보입니다. 새 음반 <GRACE>는 그가 겪어온 삶의 깊은 여정과, 아버지로서 새롭게 발견한 평온이 담긴 그의 고백입니다.
드니성호의 창작곡과 Yiruma, Ryuichi Sakamoto, E. Gismonti 등 저명한 음악인들의 곡들이 함께 어우러져,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누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이번 공연은 음악을 연주하고 듣는 것을 넘어 아티스트의 박자와 엇박, 그리고 Q&A로 구성된 토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티스트의 담담한 이야기,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 2024년 12월 15일 (일) 오후 16시 🎫 공연 예매하기
📍 스튜디오 오프비트 | 옥인동 19-46 B1
사진 출처 | @studio__offbeat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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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가게 | 언제 가도 좋지만 이맘때 가면 더 좋잖아요 | 서촌 뮤직바
그런 때가 있죠. 이대로 집에 들어가기 왠지 아쉬울 때, 가볍지만 분위기는 놓치고 싶지 않을 때, 막상 갈 만한 데가 딱히 생각나지 않을 때. 언제 가도 좋지만 캐롤과 은은한 불빛이 수놓인 요즘 같은 연말에 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서촌의 뮤직바를 알려 드릴게요. 음악과 함께 서촌의 겨울 분위기를 잔잔히 느낄 수 있는 곳이랍니다.
📍 뮤추얼사운드클럽 | 체부동 30
📍 스탠드 바이 미 | 통인동 102
📍 소울빌 리스닝바 | 내자동 94
📍 슬로우핸드 | 내자동 110
사진 출처 | @mutualsoundclub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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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chon 22호는 12월 21일 동지(冬至)에
님을 찾아갑니다.
대설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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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빨리 찾아드는 밤
김태운
일 년 중 가장 빨리 밤이 찾아오는 날
밤이 최고로 긴 날은 아니지만 조금 미안했던지 촛불 같은 눈발과 함께 온다 창 밖은 성실하게 환해지고 밤은 무르익는다
피곤한 사람들 일찍 잠들고 밤과 눈만 서로 조금씩 어깨를 스친다 밤이 펑펑 내리고 눈은 고요히 탑을 올리느라 사각사각 살아 있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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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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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휴먼 콘텐츠 <더 서촌>
살고 싶은 로컬, 살고 싶은 삶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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