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기 이야기: 어른이 될 준비 ▪️ 인터뷰: 자립준비청년 손자영 님 ▪️ 서촌의 시공간: 서촌 전시 | 박노해 사진전 <다른 오늘> 展
서촌 가게 | 뜨끈한 국물이 전하는 겨울의 위로 <서촌 국물 맛집> |
✍🏻Editor’s note 안녕-에 힘을 주어 묻게 되는 소한(小寒)입니다. 소한은 작은 추위라는 뜻이지만,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는다’는 속담이 있듯 때로는 대한보다 더 매서운 추위로 찾아오곤 하죠. 그래서일까요. 분노와 애수가 얼기설기 뒤얽혀 살을 에는 작금의 날씨에는 혹한을 함께 견딜 사람, 그리고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어른이 더욱 절실해 보입니다. 우리는 어떤 어른을 찾고 또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까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어른을 기다리며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자립준비청년 손자영 님을 만나봅니다. 자립준비청년이란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나와 홀로 자립해야 하는 청년을 뜻하는데요. 누구보다 빨리 어른이 되어야 했던 자영 님은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이너로서 같은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 왔습니다. 자영 님은 이 여정 속에서 어른이란 무엇인지, 또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해 온 사람이기도 하죠. 작은 추위 속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적어 보냅니다. |
 |
 |
 |
 |
분노에서 시작된 용기 저를 움직이게 만든 가장 큰 원동력은 분노였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분노가 많은 아이였어요. 보육원에서 자랄 때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편견을 느끼면서 분노가 점점 쌓여갔거든요. 하지만 그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억누르고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육원을 떠나 자립하면서 억눌렀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고, ‘열여덟 어른’ 캠페인을 결심한 것도 바로 그 분노에서 시작됐어요. 한때는 제 안의 분노를 미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이제 저에게 분노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직시하고 행동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소중한 원동력이거든요. 용기를 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기존 사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문제들을 당사자로서 목소리 내는 것의 힘을 깊이 실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이야기였고요.
말과 글로 마주한 정체성 물론 제 상처를 꺼내 보이는 일이 쉽지는 않았어요. 자립준비청년들이 안고 있는 문제를 얘기하고, 저를 매번 자립준비청년으로 소개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죠. 어쩌면 내가 그 정체성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괴롭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해방감 같은 변화가 찾아오더라고요. 나에 대해 말하고 글로 쓰는 과정을 통해 분노를 조금씩 정리하다 보니, 제 정체성을 받아들이면서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생겼죠. 캠페인을 통해 제가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자립준비청년이라는 정체성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거예요. 자립준비청년 친구들도 캠페인을 본 이후에 자신이 자립준비청년임을 편하게 이야기하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변화를 보면서 저를 포함한 많은 자립준비청년들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
 |
 |
감정을 경청하는 대화 자립준비청년 후배들은 자립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보다는 막막하다거나 두렵다는 감정을 주로 이야기해요. 자립이라는 건 누구에게나 막막하게 느껴지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가장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얘기하려고 해요. 관계에서 균형을 잡고 자신을 지키는 방법처럼 일상적인 문제들에 대해서요. 특히 후배들이 자주 묻는 말은 외로움을 어떻게 다뤄야 하냐는 거예요. 사실 외로움은 저도 여전히 어려운 감정이라 솔직하게 말해요. “누구나 외롭고, 외로움은 한순간에 해결되지 않아. 하지만 너를 외롭지 않게 만드는 활동들을 하나씩 찾아보고 그 리스트를 쌓아두면 좋아"라고요. 외로움을 다루며 살아가기 외로움 속에 잠시 머물러야만 나를 발견하고 스스로 돌보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책을 거의 읽지 않았어요. 그런데 외로움 속에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면서 책을 찾기 시작했죠. 왜 나는 상처에 오래 머무는지, 왜 분노에 잠식된 채 살아가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마치 굶주린 사람처럼 책을 탐독했어요. 혼자 있는 걸 싫어하면서도 혼자일 때 오히려 나를 들여다보고 돌보는 방법을 배웠죠. 그래서 친구들에게도 외로움을 알고 달래는 방법을 찾으며 자립해야 한다고 말해요. 저도 계속 외로움을 다루는 방법의 가짓수를 늘리고 그 깊이를 더하려고 노력해야겠죠. 외로움은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잘 다루고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
 |
 |
기다림과 머무름이 필요할 때 어린 시절의 저는 곁에 오래 머물러주는 어른이 필요했어요. 저를 돌봐주던 양육자들은 매년 바뀌었으니 그분들의 수를 세어보면 스무 명은 될 거예요. 보육원에서 만난 후원자나 멘토들도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처럼 잠깐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곤 했죠. 지금의 저에게도 사라지지 않고 묵묵히 곁에 있어 주는 어른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그런 어른이 필요하고요. 사람을 키운다는 건 자본주의 시스템처럼 단기간에 결과를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많은 지원 제도가 청년들에게 투자한 만큼 빠른 결과를 바라는 것 같아 아쉬울 때가 많아요. 사람을 키우는 일에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기다림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최근에 본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의 주인공이 그런 어른이었어요.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저 베풀며 같은 자리에 머물러 계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는 옛 장학생의 말에도 ”그랬구나“ 하고 조용히 받아주면서 맞이하더라고요. 그런 어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고, 저 또한 그렇게 살고 싶어요. |
 |
쉽게 포기하지 않는 사랑 자립준비청년 후배들에게 사회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 대해 얘기할 때는 단호하게 말하는 편이에요. 타인을 단정 짓고 포기하는 건 쉽지만, 인내심을 갖고 진심을 담아 단호하게 이야기해 주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래도 저는 그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친구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누군가는 여전히 역시 보육원 출신이라 그렇다는 부정적인 말을 들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안타깝게도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어른들을 자주 마주하곤 하죠. 그래서 저는 한 번 더 인내심을 갖고, 진심을 담아 후배들을 바로잡아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린 시절의 나에게 손을 내미는 마음으로 저는 후배들을 대할 때 돕는다는 생각보다는 과거의 어린 나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다가가려고 해요. 청소년 시절 받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해준다는 마음으로요. 자립준비청년 친구들은 예민해서 제가 진심으로 대하는지 금방 느끼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해요. 동시에 쉽게 안쓰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도 모르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는 하거든요. 그렇지만 그런 감정에서 멈추지 않고 ‘왜 이런 상황일까? 이걸 바꾸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행동하려고 해요. |
저는 재미있게 살려고 태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너무 심각해지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유머는 삶을 덜 삭막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거든요. 심각한 일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유머까지 없으면 정말 답답할 테니까요. 그리고 제 인생 문구는 ‘되도록 멀리, 낯설게, 깊게 보자'인데요. 어떤 심각한 상황도 멀리 보고 낯설게 바라보면 조금 더 여유롭고 재미있게 다가갈 수 있다고 믿어요. 사람을 볼 때도 단편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깊게 들여다보려고 하고요. 태어난 순간을 축복으로 여기며 재미있고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어요. |
✍🏻Editor’s note
몇 해 전, 가수 김창완 씨가 전했던 새해 인사가 떠오릅니다. “새해에 특별한 기대를 걸지 않겠습니다. 새해를 마치 처음 태양이 뜨는 것처럼 맞지 않겠습니다. 새해에 갑자기 내가 착한 사람이 된다거나,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는 망상도 접겠습니다. (...) 다만 새해에는 잘 보고 듣고 말하겠습니다.”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이들의 마음을 보고 들으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자영 님을 이 문장 위에 덧대어 봅니다. 잘 보고, 잘 듣고, 잘 말하겠다는 단순하지만 깊은 다짐으로 새해를 맞이한다면 이 겨울에도 희망이 한소끔 끓어오를 수 있겠지요. 어른을 기다리며 스스로 어른이 되어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가 가득하길 소망하고 또 소망합니다. 더 서촌 구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서촌 전시 | 라 카페 갤러리 <박노해 사진전: 다른 오늘>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따스한 온기를 머금은 서촌의 공간과 전시가 있습니다. 바로 '라 카페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박노해 사진전 <다른 오늘>입니다. 이번 전시는 매일 아침, 한 장의 사진과 문장으로 ‘다른 오늘’을 열어준 <박노해의 걷는 독서〉 10주년 특별전으로 지난 1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연재했던 작품 중, 긴 울림을 선사한 90점의 작품을 새롭게 구성해 선보인다고 합니다.
각기 다른 오늘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초록, 빨강, 흑백, 노랑, 파랑 색감의 사진과 그 속에 담긴 문장들은 우리에게 삶의 지혜와 용기를 건네는 듯합니다. 변함없는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나아가며 새로운 하루를 열어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전시를 보며, 새해의 첫 걸음을 단단히 다져보는 건 어떨까요.
🎅🏻 박노해 사진전 <다른 오늘> 展 📅 2024년 8월 30일 ~ 2025년 3월 2일 🕟 11~21시 / 매주(월) 휴관 📍 서촌 라 카페 갤러리 | 통의동 10
사진 출처 | 라 카페 갤러리 네이버 블로그 |
 |
🔍 서촌 가게 | 뜨끈한 국물이 전하는 겨울의 위로 <서촌 국물 맛집> 겨울의 깊은 한가운데, 작은 추위가 문을 두드리면 자연스레 마음까지 녹여줄 따뜻한 음식이 떠오릅니다. 사골 육수의 깊은 맛으로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설렁탕, 칼칼한 향으로 몸을 데워주는 해장국, 그리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전골 냄비의 온기는 하루의 피로마저 서서히 녹여 주지요.
새해를 맞아 새로운 다짐과 함께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는 힘이 필요할 때, 움츠러든 어깨를 풀어주며 마음까지 든든하게 채워줄 서촌 국물 맛집을 소개합니다!
📍 고래 | 통의동 81 📍 백암 박가네 순대국 | 통인동 147-2 📍 서촌 인왕식당 | 통인동 27-2 📍 서촌 전통 순대국 | 필운동 148-1 📍 이서방네 순대국 | 필운동 191 📍 전주콩나물해장국 | 내자동 1-3 📍 통인감자탕 | 통인동 89-20 📍 해장국 사람들 | 창성동 98-6
|
the seochon 24호는 1월 20일 대한(大寒)에 님을 찾아갑니다.
소한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 |
추위 속으로 뛰어든 추위
김태운
추위는 자신이 충분히 추워서 추위만큼은 자신 있다 생각했다 더 큰 추위를 만나도 자신이 더 추울 것이라 믿었다
다른 추위를 만나러 가 보자 바람을 일으켜 몸을 띄웠다 더 북쪽으로 더 북쪽으로
하지만 추위는 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오히려 북쪽에서 거대한 추위가 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올 테면 와 보라지 있는 힘껏 강추위를 만들어 냈다 눈 내리고 연못과 길이 얼었다 추위는 어느새 더 큰 추위에 둘러싸인 것을 알게 됐다
추위는 추웠고 매서웠다 추위들은 서로 뒤섞여 어질어질했다 어떤 작은 추위는 못 견디고 얼어 버렸다 그렇다고 아직 덜 추울 순 없었다
녹지 않는 순간들이 이어졌고 살아 있는 것들은 지혜를 모았다 추위는 여전히 추웠고 풍경은 휑해졌다
추위는 추위 속에 있었고 서로 경계를 몰랐다 모든 것이 온 힘을 다해 목숨을 붙들고 있었다
추위는 어느 따뜻한 곳에도 초대 받지 못했고, 여전히 애쓰며 추위 속에 머물 뿐이었다
추위는 그렇게 존재했다 추위는 그렇게 존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추위는 추위 속에서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
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
로컬 휴먼 콘텐츠 <더 서촌> 살고 싶은 로컬, 살고 싶은 삶을 발견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