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터 이한나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기 싱얼롱 | 서촌 문구 편집숍 ▪️ 절기 이야기: 겨울에 발견하는 봄
▪️ 인터뷰: 작가 이한나 님
▪️ 서촌의 시공간: 서촌 문화 |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기 싱얼롱
서촌 가게 | 기록으로 담아내는 나의 올 한 해 | 서촌 문구 편집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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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겨울이 성큼, 코끝에 찾아왔습니다. 한겨울을 향해 가고 있는 소설(小雪)이지만, 응달을 벗어나 한 걸음 햇빛 속으로 나서면 한낮의 볕은 따스하기만 합니다. 소설은 작은 눈이라는 뜻이지만 따뜻한 햇살이 남아 있는 계절이기에 ‘소춘(小春)’, 즉 작은 봄이라 부르기도 한다죠. 낮엔 작은 봄을, 밤엔 작은 겨울을 품고 있는 이 계절은 마치 우리의 삶처럼 한 손에 봄과 겨울을 동시에 쥔 듯합니다.
이 계절처럼 겨울 속에서 봄을 발견하는 작가 이한나 님을 만나봅니다. 덴마크의 교육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호이스콜레에 머물렀던 한나 님은 그곳에서 삶의 새로운 봄을 만나게 됩니다. 함께 노래하며 위로를 주고받는 덴마크의 문화 ‘펠레상’을 통해 노래가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강한 연결고리라는 것을 깨달았죠.
그 감동을 가슴에 담아 한나 님은 책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를 세상에 내놓았고, 서촌에서 ‘싱얼롱’을 열어 함께 노래하는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글과 그림, 그리고 노래로 마음을 말하는 한나 님의 이야기를 지금 들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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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선 시간이 남긴 꽃과 풀
아프기 전까지는 제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자신이 없었어요.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면서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일이 두려웠죠. 그러다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면서 모든 걸 멈출 수밖에 없는 시간이 찾아왔어요. 치열한 경쟁과 불안 속에서 바쁘게만 살아오다가 강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겪게 된 거죠.
처음에는 그 시간들이 무척 불안했는데 점차 불안이 가라앉으면서 오히려 여유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마치 희뿌연 흙탕물이 가라앉아 서서히 맑아지는 것처럼요. 우리는 가족, 친구, 미디어, 그리고 자기 자신까지 스스로 끊임없이 흔들어대면서 그 흙탕물이 가라앉을 여유를 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투병이라는 상황 덕분에 그 여유를 가질 수 있었던 거죠. 그 시간을 통해 시야가 점점 맑아지면서 제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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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나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덴마크에서 경험한 행복을 글로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글과 그림, 그리고 노래는 제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 같아요. 내 경험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삶을 희망적으로도, 때로는 부정적으로도 다시 구성할 수 있으니까요.
쓰고, 그리는 일은 일상 속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울적한 시기도 다른 어떤 때와 다름없이 고르게 살피고 결국엔 사랑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되어 준다. 한참을 달아나다가, 다시 돌아본 내 아픈 시절의 곳곳에 예쁜 꽃과 풀들을 심어 두고 돌아왔다. 그럴 수 있는 힘은 모두 완전히 멈추어 서 있던 시절에 길러진 것이다. 그 시간들이 전해주는 선물들을 매일매일 받아안으며 어제를 딛고, 오늘을 음미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마음껏 홀가분해진다.
이한나, 『낫고, 낳고, 나아가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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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나를 잠재우고 타인의 소리를 듣는 순간
노래는 혼자 있을 때 커지는 고민과 불안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줘요. 제가 진행하는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싱얼롱에서도 그걸 자주 느껴요. 싱얼롱에서는 잘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만 해도 충분하거든요. 그러다 보면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소리가 들리고, 타인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요. 저도 예전에는 누군가를 보고 ‘왜 저렇게 이기적이지?’ 비판적으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 사람도 자기 문제에 지쳐서 타인을 못 보는 거구나’라고 이해하게 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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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모든 순간을 이야기하는 노래
덴마크에서 노래는 사람과 사회를 연결하는 매개체예요. 호이스콜레 노래책에는 덴마크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민요와 자유, 공동체, 사랑 등 삶의 주제를 담은 곡들이 실려 있죠. 이 노래책을 통해 덴마크인들은 함께 노래하며 서로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고받아요. 또, 이혼이나 이민자 같은 무거운 주제도 회피하지 않고 노래로 표현하며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요. 덴마크와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도 노래를 통해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덴마크에서의 배움을 토대로,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참사와 같이 말하기 어려운 주제를 싱얼롱에서 노래로 이야기하고 위로를 나눴던 것처럼요. 노래가 삶과 사회를 연결하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게 하는 매개체라는 걸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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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즐거운 순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슬픔과 회한, 분노와 질투, 후회와 자책이 넘실대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며,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의 문제 많은 삶을 껴안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노래책은 밝고 기쁘고 경쾌한 노래만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어두운 노래일지라도 함께 부르면 결코 침울할 수만은 없게 된다.
이한나,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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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2018년 이른 봄, 한나님은 갑작스레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당시 치료와 회복의 시간을 겪은 이야기를 책 『낫고, 낳고, 나아가기』에 담아냈죠. 흉터가 서서히 낫고,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낳고, 다시 삶 속으로 나아가는 과정을요. 호이스콜레 노래책에는 자유, 사랑, 공동체처럼 삶의 중요한 가치를 담은 노래들이 주제별로 정리되어 있다고 해요. 마치 그 노래들이 삶의 한 조각을 완성하듯, 한나 님의 투병 경험도 한나님의 인생 노래책에 새로운 한 곡으로 더해진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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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너머로 나아가기
사람은 누구나 아프기 마련이에요. 하지만 아픔이 삶의 전부는 아니죠. 아프다가도 낫고, 다시 아프기도 하면서 우리는 나아가는 과정을 반복해요. 이 과정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아픔과 회복이 함께 오는 거라, 이를 받아들이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두려움에 회피하기보다는 모든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삶을 더 깊이 음미할 수 있거든요. 제가 책의 서문에서 ‘사람은 아프다.’ ‘사람은 낫는다.’ 이 두 문장이 한 줄에 나란히 놓인 걸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바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거든요. 아픔과 회복은 언제나 함께한다는 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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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만으로 충분한 나
살다 보면 수세에 몰릴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마다 느끼는 건, 내 가치를 증명하려는 시도는 끝이 없고 결국 불가능한 일이라는 거예요. 지금은 어디서든 이렇게 생각해요. ‘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밥을 먹고 몸을 돌보며 살아가는 것 자체로 이미 내 역할을 다하고 있는 거죠. 책을 쓰거나 인터뷰를 하는 일은 그저 플러스일 뿐이에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죠. 이런 것들은 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하는 게 아니에요. 부족한 걸 채우려 애쓰기보다 내 안에 이미 많은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불안에서 벗어나고 현재의 행복을 더 크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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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이 아니라 고침으로 이어지는 길
삶은 자전거에 기름칠을 하듯, 뻑뻑해지면 고치고 다시 나아가는 과정 같아요.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도 없고 부족하거나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그때그때 고쳐가면 되는 거죠. 어느 날 완벽한 상태를 만들어놓고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 다시 기름칠하고 고치고 망가졌다면 또 일으켜 세우며 계속 이어가는 거예요. 스스로를 돌보는 과정을 통해 삶은 부족하고 실패해도 괜찮은 여정이라는 걸 배우게 된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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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열매를 맺는 힘
책 표지에는 덜 익은 초록색 토마토 그림을 담았어요. 항암 치료 중 텃밭을 가꾸며 마지막 수확을 하러 갔을 때였어요.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이미 모두 다 따냈으니 더 이상 열매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초록 토마토가 또 맺혀 있는 거예요. 식물들은 남아 있는 에너지를 마지막까지 열매 맺는 데 쓰고 있었던 거죠. 그 모습을 보면서 생명은 언제나 생명을 향해 나아간다는 걸 깨달았어요. 보통 가을 들판을 보면 죽어가는 모습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그날 토마토를 본 이후 저는 가을 들판도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처럼 느껴졌어요.
이 경험은 암 치료 후 느꼈던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됐어요. ‘재발하면 또 항암하고 언젠가 죽게될 텐데’같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혔지만 토마토가 제게 방향을 알려준 거죠. 살아 있는 한, 삶을 향해 나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요. 그래서 두려움을 갖는 대신 남은 에너지를 삶에 다 쓰기로 다짐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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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산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삶의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저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는 단순한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삶은 그 자체로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 존재를 충분히 발휘하고 내가 가진 고유한 빛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싶어요. 나아가 나와 다른 사람들의 빛이 자유롭게 빛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후회 없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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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문화 |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정기 싱얼롱
한나 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마음속에 자연스레 떠오른 질문이 있었습니다. “다음 정기 싱얼롱은 언제일까?” 구독자 여러분도 같은 궁금증과 설렘을 느끼셨을 것 같은데요.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시간이 될, 2024년의 마지막을 노래로 물들일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열네 번째 정기 싱얼롱. 서로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멜로디를 만들어가는 시간 안에서 마음이 연결되는 따뜻한 순간에 서촌 이웃분들을 초대합니다.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열네 번째 정기 싱얼롱: 겨울 📅 2024년 12월 20일(금) 저녁 7시 📍 서울생활문화센터 체부 (체부동 187) 💌 참가자 모집 링크 (11월 30일 오픈 예정)
사진출처 | <노래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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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가게 | 기록으로 담아내는 나의 올 한 해 | 서촌 문구 편집숍
2024년 달력도 이제 한 장을 남겨둔 이맘때, 한 해의 끝자락에 서 있음을 실감합니다. 바쁘게 달려온 날들이 하나둘 머릿속에 스쳐가면서도, 문득 내년을 준비하는 손길이 설렘을 품게 하죠. 오늘 소개할 서촌 가게는 바로 이런 설렘을 기록으로 담아내는 문구 편집숍입니다. 새해를 맞이할 다이어리, 누군가에게 전할 따스한 연말 카드, 그리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게 해줄 노트 한 권을 통해 올 한 해는 따뜻한 문장과 기록들로 마무리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촌 문구 편집숍
📍 리틀템포 디자인샵 (체부동 18-5 2층) 📍 올라이트 (체부동 102) 📍 원모어백 (필운동 146-1 2층)
📍 파피어프로스트 (누하동 1-10)
사진 출처 | @papierprost 인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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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chon 21호는 12월 7일 대설(大雪)에
님을 찾아갑니다.
소설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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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오고 있다
김태운
겨울
다 알고 있지만 저 멀리서 지금 여기로 재빠르게 밀려드는 겨울을 몇이나 보았을까
숲과 풀이 온 힘을 다해 집중하느라 몹시 흔들리고 짐승들은 안녕과 안녕과 또 제발 안녕을 비느라 잠시 숨 참는 질식
멀리서부터 짓궂게도 들이마시지 않고는 잠시도 살 수 없는 모든 공기를 이끌고 겨울은 거대한 장벽
버티는 것이 감당할 수 있는 전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듯 가까워지는 겨울
숨기지 않고 주저함도 없이 밀어닥치는 것을 하릴없이 보고 보고 또 보며 겨우 한 숨을 들이마시며
마주 선 것이 아무도 부탁하지 않은 삶들의 대표라도 된 것마냥 어깨뿐인 사람처럼 겁을 부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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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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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휴먼 콘텐츠 <더 서촌>
살고 싶은 로컬, 살고 싶은 삶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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