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소하우스 운영자 오현영 님 |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 절기 이야기: 느긋이 거닐며 사는 삶
▪️ 인터뷰: 소소하우스 운영자 오현영 님
▪️ 서촌의 시공간: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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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장마가 다 갔다고 한시름 놓은 것도 잠시, 여전히 후덥지근한 여름의 향연이 계속 되고 있습니다. 무더위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 하루빨리 가을볕이 드는 선선해지는 때를 기다리게 되는 요즘입니다. 더서촌의 열세 번째 절기는 가을의 시작인 입추(立秋)입니다. 더서촌 열세 번째 절기 인사는 건축가이자, 소소하우스의 운영자인 오현영 님과 함께 드립니다. 유유자적 서촌을 거니는 그녀의 발자취에 나의 집을, 그리고 나의 동네를 애정하는 마음을 듬뿍 느낄 수 있었습니다. 소소하우스에서 느긋하고 소박한 일상을 보내는 그녀의 잔잔한 이야기가 무르익어가는 시간을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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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을 만나기까지
저와 남편은 대학교 때부터 건축과 CC였어요. 대학교를 같이 졸업했고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했었죠. 그러던 중, 저희 아빠가 퇴직 전에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셔서 남편과 결혼을 결심하고서 집을 알아봤어요. 다른 신혼부부처럼 결혼자금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정말 많은 집을 보러 다녔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문득 건축한다는 사람이 신혼집으로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게 조금 회의감이 들더라고요. 둘 다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싶기도 해서 전 재산을 탈탈 털어 외국에 나가서 살고 싶다고 부모님한테 말씀드리고, 이후 2년 동안 신혼여행으로 영국에서 1년, 독일에서 1년을 보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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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을 가장한 운명적 순간
2년 동안의 신혼여행이 끝난 후, 한국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살까 고민했던 시기에 한국에 계신 이모님의 서촌 한옥이 떠올랐어요. 그 당시 이모님이 퇴직 후에 한옥에서 지내고 싶으셔서 서촌 한옥을 계약하셨었거든요. 퇴직하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있기도 했고, 누군가에게 세를 주기에는 조금 애매한 상황이었어요. 저희 부부가 한국에서 지낼 집도 없었고, 또 누군가와 생활 공간을 공유한다는 게 재미있는 일이잖아요. 그래서 이모님께 우리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거기서 생활할테니 그때까지 우리한테 좀 빌려달라고 제안드렸죠. 그렇게 소소하우스를 시작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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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 편히 쉴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가 추구하는 느낌은 잘 꾸며놓은 할머니 집 같은 공간이었어요. 할머니 집에 놀러 가면 아무것도 필요 없이 마음 편히 쉬다 올 수 있잖아요. 동시에 세련되고 예쁘게 꾸며놓은 따뜻한 할머니의 감성이 느껴지는 집을 그리며 소소하우스를 만들었죠. 소소하우스에 살면서 어울리는 소품을 하나씩 추가하다 보니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많아졌어요. 오시는 손님들께서도 소품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생활용 공간이지만, 여행자들에게는 낯선 곳에서 익숙함을 느끼고 더 친근해질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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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가장 나답게, 오래 머무는 공간이 집인 만큼 건축가인 현영 님의 취향을 빼곡히 담은 소소하우스를 보는 게 참 흥미로웠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만들면서 애정이 듬뿍 생긴 만큼, 나만 알고 있는 집의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하는 그녀의 들뜬 목소리에서 짜릿한 행복이 묻어 나오는 걸 느꼈어요.
동시에 그녀가 마주한 소소하우스의 풍경을 이곳에 묵는 여행객들에도 고스란히 전해지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여행객들이 느끼는 소소하우스는 과연 어떤 곳인지, 여행이 주는 또 다른 묘미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눠보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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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바뀌면 한옥 관리를 부지런히 해야 해요. 계절이 바뀌면 티가 확 나거든요. 소소하우스에서는 70, 80년대 사용하던 문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요. 비가 열흘 이상 오면 나무가 불어요. 그래서 모든 문이 삐걱대면서 열리지 않기도 하거든요. 장마가 그치고 가을볕이 조금 들기 시작하면 나무가 마르고 문을 여닫는 것도 굉장히 부드러워져요. 나무가 다 마르고 나면 나무 자재 사포질을 하거나 칠을 새로 해주고 있어요. 또, 문에 창호지가 붙어있는데 비를 맞으면 곰팡이가 피더라고요. 비가 오면 교체를 할 수 없어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에 비가 그치면 창호지를 전부 교체하는 일을 한번씩 해주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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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갛게 무르익어가는 사과를 보며
소소하우스는 30평 정도 되고 절반이 마당이에요. 마당에 조그마한 디저트용 사과가 열리는 알프스 사과나무가 있는데 봄에는 꽃이 피어요. 꽃이 짧게 피고 금방 떨어지긴 하지만요. 사과가 맺혀 있다가 장맛비를 맞고 붉게 물드는 시기가 가을이라 그때를 굉장히 좋아해요. 가을이 되어 동네분들 놀러 오시면 사과를 따서 나눠드리기도 했고요. 저는 가을이 되면 사과가 맺혀 있는 마당을 보는 걸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이 풍경을 마주하는 때가 되면 가을 왔다는 걸 느껴요. 작년하고 올해하고 기후 문제 때문에 봄이 굉장히 더웠다가 갑자기 추워져서 꽃이 제대로 피지를 않아 작년하고 올해는 사과를 전혀 못 보고 있어 아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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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따라 찾아오는 반가운 사람들
한옥이 신기한 게 해의 높이가 달라지면서 볕이 들어오는 깊이가 달라져요. 여름에는 대청까지 들어오지 않다가 가을이 되기 시작하면 아침에 방 안까지 볕이 예쁘게 들어오거든요. 그러면 안방에서 잠만 자고 있어도 계절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인지 소소하우스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방문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매번 한국 올 때마다 이틀 정도 들리시는 대만 분이 소소하우스의 계절 바뀌는 풍경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지금처럼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손님들이 불편해하실까 봐 걱정을 많이 하는 편인데, 오히려 ‘비가 오는 걸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지난번에 왔을 때 못 봤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여기 살면서 느끼는 좋은 점을 손님들이 보고 가셨구나, 잘 누리다 가셨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일 뿌듯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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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쉼을 누리는 여유
소소하우스 살면서 여유를 많이 찾은 것 같아요. 여행 가서 그저 누워 있는 게 항상 죄책감 들었거든요. 소소하우스에 살면서 가장 많이 바뀌게 된 건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는 거예요. 여름이어도 마루가 되게 시원해서 마루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동안 왜 죄책감이 드는 일이었지?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곳이에요. 잠시 숨 돌릴 여유를 부려도 괜찮다는 걸 배우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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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비로소 쉼이 되는 시간
우리 집에 온 손님이 최대한 이 집에 늘어져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여기 다락에서 마당을 보는 게 예쁜데 한번 보셨을까?’,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셔서 여기 안방 문을 열고 마당을 보고 있으면 볕이 들어오는 걸 보는 게 힐링인데 충분히 즐기셨으려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손님들이 퇴실하시고 청소하러 들어갔을 때 오히려 청소할 게 없으면 아쉽더라고요. 더 많이 누리고 즐길 수 있는 게 많은데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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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있는 손님들이 오면 기분이 좋아요. 왜냐하면 제가 소품 하나하나 놓는 자리도 다 생각해서 놓는 편인데 아기들이 오면 모든 소품의 위치가 다 달라져 있거든요. 화단 안에 숨겨놓은 인형 위치까지 다 바꿔놔요. 모든 물건의 위치가 다 바뀌어 있어도 기분이 좋은 게 소소하우스의 구석구석, 소품 하나하나 모두 세밀히 보고 잘 누렸다는 의미라서 고마운 일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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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거닐며 누리는 서촌 골목
서촌에서 차량이 잘 들어갈 수 없는 좁은 골목길이 보인다 싶으면 꼭 한번 걸어 들어가 보시기를 추천해요. 저도 서촌에서 6년을 살았는데 처음 가보는 골목이 있어요. 골목 안에 들어가 보면 한옥도 많고 화단을 예쁘게 잘 가꾼 집이 많아요. 서촌에 와서 먹고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보인다면 꼭 한번 걸어 들어가 보시기를 바라요. 재밌는 곳이 굉장히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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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만족을 잘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평온하게 잘 지내고 남들이 보기에 되게 부러워 보이는 삶을 살면서도 뭔가 조바심 내고 불편해하고 걱정하는 걱정 인형 스타일이에요. 비 오면 짚신장수 아들 걱정하고, 해 뜨면 우산장수 아들 걱정하는 것처럼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인 스타일이다 보니까 좋은 일이 있거나 행복한 일이 있을 때 그 자체로 온전히 행복해하는 걸 못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왜 살지?’라는 생각을 종종 하긴 하거든요. 제 입에서 ‘내가 이러려고 살지’, ‘이게 너무 좋아서 살지’ 라는 말이 잘 안 나와요.
남편한테 ‘그냥 지금 딱 적당히 잘살고 있는 것 같으면 그냥 지금 죽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제가 계속 안고 가야 될 질문인 것 같아요. 지금 그만 사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오히려 앞으로 행복을 추구하면서 산다는 게 제가 행복하다는 게 어떤 건지를 명확하게 정의를 내린 적이 없어서 그런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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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왜 사세요?'라는 질문에 늘 확신 있게 답하는 그간의 인터뷰이들을 보면서 참 부럽기도 했어요. 무언가에 매진하고, 자신의 것을 찾는데 열중하고, 온 힘을 쏟는 듯한 그들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심심하고도 무얼 위해 정진해야 할지 모르는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겼던 적도 많았다고 조심스레 고백해 봅니다. 현영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건, 우리는 남들보다 한 박자 느리게 걷더라도, 느린 걸음대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과 주변의 소리들에 귀 기울이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소요자재(逍遙自在): 천천히 거닐며 어떠한 속박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사는 삶을 뜻하는 말
나의 속도를 아는 것이 어쩌면 가장 나답게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남들이 앞서가는 모습에 조급해지고, 마음 졸이며 같이 뛰기보다 '그러라 그래' 하며 한 걸음 두 걸음 경쾌한 발걸음과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여름의 태양빛도, 한 풀 꺾인 더위를 뒤로한 채 선선한 바람 따라 거니는 삶 모두 다 있는 그대로 의미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는 입추(立秋)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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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전시 소개 | 그라운드 시소 서촌 | 힙노시스: 롱 플레잉 스토리
다시 돌아온 바이닐의 시대. 바이닐은 감성적이고 힙한 공간에 빠지지 않는 오브제로 자리하고 있죠. 이제는 '어떤' 음악을 듣느냐보다 '어떻게' 향유하느냐가 더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아날로그의 시각적 트렌드 방향이 음악과 결합하여 아날로그 레코드가 주요한 문화 코드가 되면서 바이닐은 새로운 영감과 즐거움을 주는 아트웍스가 되었죠. 바이닐에 힙한 여정을 경험할 수 있는 서촌 전시를 소개해 드려요. 폴 매카트니, 핑크 플로이드, AC/DC 등 대중음악 역사를 바꾼 아티스트의 바이닐을 디자인했던 힙노시스 스튜디오의 롱 플레잉 스토리랍니다. CG가 없던 시절 직접 몸에 불을 붙이고, 사막에 가서 작업을 할 만큼 치열한 삶의 결과물이자 위대한 아트웍스로 남은 힙노시스 스튜디오의 작품을 보시면서 입추에 머문 무더위를 날려 보세요!
📍 그라운드 시소 서촌 | 통의동 35-17
🎟️ 티켓예매
사진출처 | 그라운드 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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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가게 소개 | 감각의 실마리를 찾아서
소소하우스처럼 좋은 공간에 가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소품에 주목하게 됩니다. 때로는 작은 장치가 공간의 전체 무드를 결정하니까요. 흔히 감각 있는 사람들은 그 사소함을 알아보는 재치가 뛰어난 것 같아요. 오늘은 입추를 맞이하며 감각과 감성을 발견할 수 있는 서촌 가게를 소개해 드릴게요. 새로운 계절을 맞아 일상에도 새로운 무드가 필요할 테니까요.
📍마이초이스 서촌 | 통의동 73-5
📍수풀 | 청운동 108-5
📍꽁뜨와 드 미라벨 | 창성동 150-2
사진출처 | 마이초이스 서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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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chon 14호는 8월 23일 처서(處暑)에
님을 찾아갑니다.
입추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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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서둘러
김태운
단풍 들기도 전에 단풍나무 씨앗은 이미 빨개져 있다
섣불리 뛰쳐나가 어릴 때 독립하려는 청소년처럼 부릉부릉 빨간 날개를 전부인 양 시동 걸고 있다
거칠게 비가 와도 물러섬 없이 바람 불어도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고 때 이르게 바닥을 뒹구는 은행알들을 보며
언제든지 하강을 준비하는 빨강을 단단히 매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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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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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휴먼 콘텐츠 <로컬루트>
사람의 가치, 로컬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로컬. the seo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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