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초등학교 5학년 때 소설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대학에서도 소설을 전공했어요. 일하고 소설 쓰기를 반복하며 지내다가 노동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어야겠다고 생각해서(물론 글쓰기도 노동이지만요.) 2012년부터 하루에 한 편씩 시를 쓰기 시작했죠. 어느 지점부터는 시 쓰기를 멈출 수 없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덧 12년이 되었고, 지금까지 4천 편이 조금 넘는 시를 써왔네요. 매일 쓸 수 있다는 게 저의 장점이랄까요? 이제는 꾸준함이 제 경쟁력이 된 것 같아요.

시가 잘 안 읽히는 장르이기도 하고 어려운 부분도 분명히 있죠. 그러나 결국 시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제가 잘 다루는 도구이자 제 표현 방법인 시를 통해 동네를 알아가고, 이웃분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서 더서촌에 기고 제안을 먼저 드렸어요. 레터에 기고하는 시는 대부분 굉장히 노력하고 있는 시예요. 절기의 의미와 서촌스러움을 함께 담으려고 노력하죠. 절기라는 시기적 주제가 명확하게 있다 보니 매번 백일장 하는 기분이에요.(웃음) 

요즘은 현대사회에서 시가 과연 사람들에게 효용이 있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 밖의 시'라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데요. 시를 엽서 형태로 제작해서 선물로 주고받거나, 공간에 배치할 수 있게 활용해 보는 거예요. 서촌에 이사 오면서 서촌 가게에 관해 쓴 시도 제법 많아졌어요. 언젠가 우연히 가게에 갔는데 제 시가 놓여 있는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죠.

우리의 마을

서촌에 온 지 이제 1년이 좀 넘었네요. 삶의 불안 요소를 줄여보려고 정착할 동네를 한참 찾았었죠. 어디를 가봐도 그런 느낌이 없었는데, 마을버스 9번에서 내려 동네를 보는데 ‘여기다. 이 동네다. 여기에서 살아야겠다.’ 싶더라고요. 저번 레터에서 영주 님이 ‘우리 마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은 서울에서 서촌밖에 없다고 하셨잖아요. 살아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집의 풍경이 정말 좋았어요. 동네 특성상 풍경이 훼손될 일도 거의 없으니까 이 경치를 보며 행복하게 오래 살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또 재미있는 건, 제 태몽이 백호거든요. 어머니께 서촌으로 이사오며 인왕산이 백호라고 말씀드리니 이제 네가 살 곳을 찾은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이곳이 내 인생의 시작점이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삶에서 자연스럽게 시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죽을 때까지 탐구해 보고 싶어요. 오늘처럼 시를 통해 이웃을 만나고, 또 사람을 통해 다시 시를 만들어 내면서요. 시를 쓰며 반려묘 수리, 여자친구와 함께 여유를 갖고 좋은 풍경을 보며 좋은 사람들과 어우러지며 살고 싶다는 희망이 이곳에서는 가능할 것 같아요.

모두의 이웃

예전에 ‘아름다운 가게’에서 일하며 알게 된 건데 ‘그물코 정신’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물코는 그물의 씨실과 날실이 얽혀 있을 때 가운데에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데요. 그물처럼 우리는 다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죠. 저는 수많은 노동과 도움을 너무 손쉽게 얻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게 당연한 듯 주어지는 것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있고, 내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것이 사실은 특혜일 수 있죠. 일상의 권리를 누리고 있으니,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서 같이 목소리를 내고 도움을 주는 것이 제겐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저도 살면서 다른 이들의 도움과 배려를 받고 사니까요.

사실 매일 시를 쓸 수 있는 원동력도 타인, 이웃에게서 와요. 제 안에서 아무리 쥐어짜서 시를 쓴다고 해도 결국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타인과의 관계, 이웃과의 삶에서 영감을 얻기 때문에 제 시는 타인에게서 온다고 말할 수 있죠. 타인의 삶이 안전하고 행복해야 저도, 저의 시도 존속될 수 있는 것 같아요. 

✍️Editor’s note

태운 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이른 곳은 안전한 사회였습니다. 오늘도 사랑하는 이와 저녁을 함께 먹는 것,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고양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것, 어제와 같이 오늘도, 오늘과 같이 내일도 안전한 나의 공간과 나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는 과정 그 모든 것이요. 모두가 제자리로 돌아가는 이토록 평범한 일상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에게도 당연한 사회. 지난 소서에 이어 대서에서도 타인의 삶을 마치 내 삶 보듯 바라보는 이웃을 만났습니다. 뜨거운 절기의 우연한 연속일까요. 염소 뿔도 녹인다는 대서의 뜨거움은 이들 앞에 아무런 힘도 없을 겁니다.

다시, 서촌

예전에 여자친구와 예순쯤 되면 종로의 한옥에서 살아보자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근데 그때 이 동네에 오면 알고 지내는 이웃도 없을 텐데 의미가 있을까 싶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집에 살아도 소통하고 이야기 나눌 이웃이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 일찍 살아보자 싶었죠. 지금부터 지내면 그때쯤 여러 이웃과 어우러져 함께 사는 공동체로 살고 있지 않을까요?

서촌에는 농학교와 맹학교도 있고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이루며 사는 이웃들이 많아요. 삶의 모습은 달라도 어우러져 사는 모습과 서로를 수용하는 모습은 비슷하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슈는 '다양성 존중'이에요. 결국 안전한 사회는 서로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가능하고요. 무엇보다 서로를 의지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서로의 얼굴을 알고, 삶을 이해하면서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는 동네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달짝 지근한 팥이 가득한 팥빙수가 생각날 때

📍놋그릇 가지런히 | 통인동 118-9
📍소울 | 창성동 98-20 

📍통의동단팥 | 통의동 67-3 

사진출처 | 서밥모 커뮤니티

the seochon 13호는 8월 7일 입추(立秋)에

님을 찾아갑니다.

대서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