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크아이비의 탄생

테이크아이비는 사진집 이름이에요. 1950년도에 나온 책이니까 70년이 넘었는데 그때와 지금의 스타일이 크게 차이가 없어요. 스웻셔츠에 반바지나 치노팬츠를 입거나, 셔츠와 바시티 자켓 등을 코디하는 걸 좋아하는데 제가 추구하는 스타일과 비슷해서 테이크아이비라는 이름을 선택했죠. 이 이름으로 가게를 오픈하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어요. 한정적인 것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테이크아이비라고 지은 걸 잘한 것 같아요.

일본에서 형성된 정체성

VAN JACKET(VAN JAC)이라는 브랜드에서 1950-60년대 미국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패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소위 ‘아이비스타일’을 탄생시켰어요. 일본에서 아이비스타일이 유행하면서 일본 도쿄 긴자의 미유키 거리에서 VAN JAC을 입은 사람들을 미유키 족이라고 불렀죠. VAN JACKET가 미국에 가서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모습을 직접 촬영하기도 했고요. 미국 상류층 학생들은 어떻게 옷을 입는지 보여주려고 만든 사진집이 TAKE IVY예요. 사진집을 보면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이 스웨트 셔츠, 금장 블레이저, 치노팬츠를 입은 모습이 많이 볼 수 있어요. 아이비리그 학생들의 일상을 담은 쇼트 필름과 사진집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VAN JACKET도 잘 된 거죠.

미국의 아이비스타일을 동경하는 것에서 멈춘 게 아니라, 일본의 스타일로 재해석해서 일본패션 문화이자 아메리칸 캐주얼 장르를 일본화한 아메카지의 시초인 셈이고요.

서촌에서의 시작

저는 원래 편집숍을 운영하고 싶었어요. 편집숍은 바잉을 할 때 다양한 종류의 옷을 많이 가져와야 하고 시즌마다 판매 압박이 있지만, 테이크아이비 같은 세컨핸즈는 제가 원하는 옷만 가져오면 되거든요. 제가 가진 자본을 가지고 접근하기 가장 좋은 방식이기도 했고요.

서촌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많이 했던 곳이고 동네가 고즈넉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샵들도 근처에 많이 있으니까, 나중에 사업을 하면 서촌에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어요. 가게 위치와 재정 상황을 고려했을 때 모두 마음에 드는 곳이라 이곳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제가 이 일을 하기 전에 수트 서플라이라는 브랜드의 테일러였어요. 고객과 상담하고 취향과 체형을 파악하는 일을 해서 그런지 초반에는 가게에 오시는 모든 손님에게 말을 걸었어요. 서촌에 놀러왔다가 가볍게 구경하러 오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런 분들에게는 조금 부담이 될 것 같아서 이제는 매장에 조금 오래 머무르시거나, 옷에 특별히 관심 있으신 손님에게만 다가가서 옷도 추천해 드리고 이야기도 나누곤 하죠.

빈티지 낱말사전

세컨핸즈는 다른 사람이 입었던 옷이지만, 출처가 남아있는 옷이에요. 그래서 상태가 좋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옷이라고 볼 수 있죠. 빈티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재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가치와 가격이 상승한 옷이에요. 미군의 보급품으로 나왔던 모즈 파카가 가장 대표적인 예시죠. 요즘은 모즈 파카를 사려고 해도 50-60만 원 정도 할 거예요. 구제는 버려진 옷 중에서 상품성이 있는 옷을 판매하는 거고요.

일본은 세컨핸즈, 빈티지, 구제를 파는 업체와 가격이 모두 달라요.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구제는 태국에 수입해서 가져오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일본의 세컨핸즈샵으로 가장 유명한 2nd STREET이 있어요. 도쿄의 빈티지 성지로 알려진 시모키타자와나 코엔지에 가면 구경할 만한 빈티지 샵이 많죠.

섬세하게 고르고 입는다는 것

빈티지의 가장 큰 장점은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이 없는데, 새 옷보다 훨씬 합리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유행을 타거나 획일화된 스타일이 아니라, 나만이 표현하고 소유할 수 있는 하나뿐인 스타일이죠. 빈티지는 구하고 싶어도 못 구하다 보니 유일무이한 개성이 되고 사는 재미도 있고요.

세컨핸즈를 고르는 팁은 사고 싶은 제품이 너무 비싸다면, 그 스타일을 최대한 흉내 낼 수 있는 세컨핸즈를 구매하는 거예요. 테이크아이비에서 판매하는 옷도 발매가보다 합리적인 가격으로 판매하거든요. 세컨핸즈로 입거나 사고 싶었던 스타일을 많이 도전해 보시길 추천해요.

옛날에는 브랜드마다 만듦새 차이가 많았던 것 같은데, 요즘에는 어느 브랜드이든 잘 만들어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실루엣이나 히스토리를 보고 구매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브랜드는 아이비스타일을 대표하는 J.PRESS와 VAN JACKET예요. 테이크아이비에서 많이 판매하고 소개해 드렸던 옷이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시그니처인 바시티 자켓이에요. 청바지, 치노팬츠, 올리브 팬츠 등 어느 바지랑 입어도 좋고 어디에도 잘 어울려서 이제는 바시티 자켓처럼 테이크아이비의 시즌별 대표 아이템을 선정하려고 해요. 봄에는 마운틴 파카, 여름에는 하와이안 셔츠를 판매하는데요. 올해 가을, 겨울에는 패딩 베스트류나 VAN JACKET의 서브 브랜드인 Scene의 헤비듀티라는 아웃도어 스타일을 판매할 것 같아요.

선선해지는 날씨만큼 중요한 옷 관리법 

가을옷이 여름옷보다 원단도 두껍고 울 소재도 많이 쓰여서 냄새를 잡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판매 제품은 스타일러로 관리해서 손님께서 구매 후 바로 입으실 수 있도록 하고요. 섬유 탈취제로 냄새를 잡아주는데 드라이를 맡기기도 하고요. 의류에서 나는 냄새를 관리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탈취제도 뿌려보고 인센스를 활용하거나 아로마도 사용해 봤는데 뿌리는 탈취제 효과가 제일 좋더라고요.

또 하나의 도전

테이크 아이비의 판매 비중으로 봤을 때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워크인으로 들어오는 손님은 여성이 더 많더라고요. 여성 빈티지 의류를 많이 찾으셔서 여성 의류 세컨핸즈 매장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며 오픈하였어요.

남성 의류는 제가 입어볼 수 있고 실측을 보면 ‘대략 어떤 실루엣의 옷이겠구나.’라는 감이 오는데 여성복은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그래서 페니 옷은 검증된 브랜드의 제품을 가져오려고 해요. 

가을의 가벼운 바람과 부드러운 햇살을 기다리는 요즘, 아직 바깥 날씨는 여름의 존재감으로 꽉 차있지만, 옷장 안은 계절의 변화가 조금씩 보이는 듯해요. 오늘은 나만의 스타일을 구축할 수 있는 옷의 쓰임새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오래된 옷도 어떻게 관리하고 보관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옷의 수명을 더할 수 있는 것 같아요. 9월, 완연한 가을을 앞두고 가을옷을 재정비할 수 있는 서촌 수선집을 소개해 드립니다. 실용과 감각을 놓치지 않는 서촌 주민들의 인정을 받는 특별한 솜씨가 있는 곳이랍니다.

📍신원세탁25 | 신교동 35
📍피노키오 옷수선 | 통인동 10-3
📍옥인길 옷수선 | 누하동 77-7

사진출처 | 피노키오 옷수선

the seochon 15호는 9월 7일 백로(白露)에

님을 찾아갑니다.

처서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