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도시 농부라고 이야기할 만큼 우리 집에는 식물도 많지만 동물도 많아요. 고양이, 새, 뱀, 물고기, 거북이도 함께 살고 있죠. 우리 가족들도 동물을 참 좋아하고 제가 환경생태학을 전공했거든요. 6살 때 자연의 길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지난 50여 년 동안 지금의 내가 걸어왔던 길을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일상의 꾸준함과 지속적인 애정이 있다면 누구나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어요.

서촌에 오게 된 건 우리 아내 덕분이에요. 부산에 있다가 서울에 올라와서도 계속 아파트에서 생활했었는데 중간에 외국에 나가 주택에서 살며 자연에 밀접한 주택 생활이 더 친근하고 편안하다고 느꼈거든요. 그래서 서촌으로 이사 온 거죠. 서촌을 생활 공간으로 보면 당연히 불편한 점도 있지만, 서울 시내 한복판 산 아래에서 불멍을 하며 우리 가족의 텃밭을 일구고 동물과 생활하고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동네가 또 있을까 싶어요. 어느 날인가 지나가는 할머니부터 이웃분들이 고맙다고 인사를 해주시는 거예요. 우리 집 1층에 대추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알고 보니 지역 주민분들이 오가다 대추 열린 걸 보시고는 나누셨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이웃과 나누고 서로 인사하고 그런 모습도 서촌 특유의 문화인 것 같아요. 이런 삶을 사는 건 다 아내 덕분이죠.

우리 집 1층 연못에 지금은 거북이가 있지만 원래는 물고기가 있었어요. 어렸을 때 6시간 동안 물고기만 쳐다보고 있을 정도로 좋아하기도 하고요. 이웃분들도 작은 연못 물고기에 대한 향수도 있는 것 같고요. 조만간 다시 키워볼 생각이에요. 제 인생에서 물고기 없이 생활한 게 6개월을 넘지 않을 정도로 물고기를 좋아하고 지금도 다양한 동물을 키우면서 살고 있을 만큼 동물을 좋아하지만, 저는 그럼에도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렇지 않고서는 오히려 많은 불편을 초래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동물을 사랑한다고 표현하기보다는 동물에 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동물이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환경을 제공하고 애정으로 끊임없이 관찰하는 거죠. 혹시나 불편한 건 없을까, 어떻게 보완해 주면 좋을까 생각하면서요. 그게 제가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이에요.

저는 보통 새벽 5시부터 하루를 시작해요. 새벽 기도 갔다 6시부터 계단 청소하고 집안일도 다하면 그다음부터는 동물들의 루틴에 맞춰 움직이죠. 저는 루틴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식물, 동물을 키우고 관리하다 보면 하루하루의 루틴도 있지만 일주일, 한 달, 6개월의 루틴도 생기거든요. 그에 맞춰서 하면 사실 크게 어렵지 않아요. 특히 파충류는 신진대사가 빠르지 않아서 특별히 관리하는 것도 없어요. 환경만 조성해 주면 되죠. 생태를 잘 모르면 힘든 것처럼 보이는데 생태를 알면 자연과 공생하는 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자연은 제 인생 그 자체예요. 자연을 가까이 접하고 집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서촌으로 와서 이 공간을 만든 거고요. 한정된 공간이지만 자연을 집중적으로 담아내려 구상한 공간이에요. 자연을 담기만 하면 관리하기가 쉽지 않으니 한정된 공간과 에너지 효율을 생각해서 스마트 기술을 많이 활용하고 있죠. 물을 주고 비료를 주는 것도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꼼꼼히 따져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시스템화했어요. 

사실 많이 오해하실 수 있는 것이 보존과 보전의 개념이에요. 예를 들어 산에 불이 났을 때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두고 이후에 다시 새로운 생태계가 시작되는 걸 기다리는 게 보존이라면, 보전은 불이 났으면 불을 끄고 사람이 적절히 관리하는 걸 말해요. 자연도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자연이라고 하면 가만히 내버려두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특히 우리나라처럼 제한된 면적에 많은 인구가 집중된 환경이라면 관리 없이 존속되기 어렵거든요. 

우리 집에서도 2022년부터 이웃 주민들과 함께 종로구 주민 공모 사업으로 도시 텃밭 ‘운서네텃밭정원'을 시작했어요. 고추, 부추, 미나리, 고수, 깻잎, 방앗잎까지 있는데 생각해 보니 많이 하고 있네요.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는 건 농사는 정말 타이밍이라는 거예요. 작년에는 잘 키워냈는데 올해는 해외 출장이 많아서 타이밍을 자꾸 놓치니까 모종 심는 것도 관리하는 것도 참 어렵더라고요.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가 농사 때문이라는 말도 있어요. 한 주만 늦어도 모종 심는 시기를 놓치고 하루만 지나도 시들어 버리니까요. 요즘처럼 기후 변화가 심하면 농사짓는 분들이 정말 고생이 많으실 거예요. 그래서 앞으로는 더욱 비닐하우스나 스마트팜으로 관리를 할 수밖에 없는 거고요.

the seochon 11호는 7월 7일 소서(小暑)에

님을 찾아갑니다.

하지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