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를 사랑하는 취향기록가 박지혜 님ㅣ서촌라운지 계절차회 |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 인터뷰: 마음을 우리는 다인(茶人) 박지혜 님
▪️ 절기에 가는 서촌: 서촌라운지 계절차회,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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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iew
바람결에 남은 봄 향기를 머금고 날로 날로 진해지더니, 어느새 초록빛으로 그윽해진 우듬지마다 초여름 햇살이 윤슬처럼 반짝입니다. 5월 5일 어린이날 오늘은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立夏)입니다. 작은 은총처럼 싹트는 초목의 잎사귀와 아이들의 싱그러운 생명력이 한 날에 만나니 참으로 절묘한 절기인 것 같습니다.
the seochon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는 보기만 해도 푸른 잎을 마음과 사람으로 느끼는 다인(茶人) 지혜 님의 삶과 차 세계를 담아 보았습니다. 지혜 님은 찻자리를 기획하고 기록하는 '취향기록가' 입니다. 취미로 시작한 차가 이제는 찻자리로, 책으로, 공간으로 지혜 님 삶 전반에 은은히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는데요. 봄과 여름이 지나치는 요즘, 지혜 님처럼 차를 마시는 분에게는 절기의 축복을 더욱 느낄 수 있는 때이기도 합니다. 올해 처음으로 딴 잎으로 마시는 햇차를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죠.
평화로운 어느 평일 오전, 우리는 아침볕 곁에 앉아 햇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차를 내어주시는 지혜 님의 손사위가 창문 밖 길게 늘어뜨려진 넝쿨 위로 나비가 스치듯 가분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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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을 타인의 설렘으로 우려내는 삶
제 성격이 그런 것 같아요. 남들이 잘 안 가본 곳에 가고 싶고, 잘 안 하는 걸 하고 싶어 해요. 차도 조금 특이하게 인도에서 시작했어요. 흔히 군대 생활하는 것처럼 힘들고 단조롭다는 인도도 그래서 가고 싶었죠. 애써, 굳이 안 가려고 하는 곳이니까. 그렇게 이십 대 때 인도에서 일하며 지내다가 우연히 차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7년이 넘게 차에 빠져 살고 있네요.(웃음) 인도는 차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홍차, 다즐링, 아쌈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직접 짜이를 만들어 회사 사람들하고 다 같이 나눠 마시기도 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중국차, 대만차로 취향이 바뀌더니 요즘은 한국 차, 특히 하동차를 좋아해요.
차를 마시면서 느꼈던 건 저는 다른 사람에게 새로운 것을 소개하고 알려줄 때 행복한 사람이라는 거예요. 직접 경험했던 것, 그게 정말 행복한 순간이라면 제가 느낀 설렘과 행복을 나누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는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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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
저는 차 자체보다 찻자리를 더 좋아해요. 이것도 차를 마시며 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라고 할까요? 차를 통해 만난 사람들, 차를 마시며 나누는 대화, 찻자리의 분위기 덕분에 차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차를 마시다 보니 집에 사람들을 초대해서 팽주(대화를 주도하고 차를 끓여 손님에게 대접하는 찻자리의 주인)로서 손님들을 대접하고 더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땐 집에 손님들을 초대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지금처럼 개인이 주도해서 사람들을 초대하고 차를 대접하는 다회(茶會)가 많지 않았어요. 2년 전만 해도 다회는 보통 찻집에서 진행하는 행사처럼 운영되었으니까요. 차업에 종사하지도 않는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그러다 서촌의 한 다실에서 용기를 얻었어요. 서촌에서 차를 업으로 삼고 계시는 분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였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일단 해보라고, 해봐야 알 수 있는 거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할 수 있겠어?"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고민은 그만 접어두고 실행해 보자 한 거죠. 그렇게 집에서 마시던 차, 다기를 양손에 가득 들고 야외 공원에서 돗자리 하나 깔고 '청춘다회' 라는 찻자리를 열었어요. 용기를 내어 시작하니 제 다회에 오신 분들이 그다음에는 영화나 음악을 더해 새로운 컨셉으로 색다른 찻자리를 여시기도 하고, 지금은 개인이 주최하는 다회가 많이 생겼죠. 여러 다회를 다니면서 좋은 차 친구도 많이 만났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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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회를 직접 기획하기도 하고 자주 가보면서 느꼈던 건, 다회를 찾아서 오시는 분이라면 이미 차를 잘 아시는 분이 많다는 거였어요. 취미로 시작한 차이지만 더 가까이 다가가니 다른 관점에서도 차를 보게 되더라고요. 일단 차를 많이 알리고 넓혀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 차에 대해서 소개해 드리고 싶어요. 보이차, 우롱차, 홍차도 물론 저도 너무 좋아하지만 우리나라 차도 좋은 게 정말 많거든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역사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아요. 본격적으로 차 시장이 생긴 건 1970년대부터래요. 그래서 차에 대해 잘 모르지만, 관심 있는 분들이 쉽고 편하게 차를 접하실 수 있도록 차회를 기획하고 진행하고 싶었어요. 그러고 보면 혼자 우당탕하며 시작한 청춘다회가 여기까지 이어지는 것 같네요. 용기 내 해보길 참 잘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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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끈으로 맺어진 다우(茶友) | 서촌라운지 계절차회
올해 1월부터 서촌라운지에서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무료 찻자리 ‘계절차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이 계절차회는 좀 특별해요. 처음에는 오신 분들 모두 아무 이야기도 없이 차만 드시다가 나중에는 서로 친해져서 시끌벅적하고 눈빛이 달라지는 게 느껴지거든요. 저도 덩달아 감정이 너무 벅차져서 서촌에서 부암동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어요. 차회라는 경험이 없는 분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하기에 정말 좋은 자리라고 생각해요. 사랑방이 없어진 우리에게 이 공간이 동네 사랑방이 되어 주기도 하고요. 정기적으로 하는 무료 다회는 거의 없는 데다 한옥에서는 물만 마셔도 맛있게 느껴지잖아요.(웃음)
찻자리를 꾸준히 진행하다 보니 차가 종합 예술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공간도 분위기에 맞아야 하고 주변의 가구나 다기, 음악, 계절, 사람 어느 것 하나 고려 안 할 수 없어요. 자리를 준비하는 팽주의 마음가짐, 품성도 작용하니까 찻자리에 앞서 저의 몸과 마음가짐도 신경 써요. 오늘 오실 손님들은 어떤 분들이실까, 어떤 마음으로 오실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실까. 늘 생각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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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iew
지혜 님의 서촌라운지 계절차회는 예약 시작과 동시에 마감이 될 만큼 많은 분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차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일 테죠. 이런 발걸음에는 좀 더 특별하고 사적인 취향을 찾아서 내면의 빈 곳을 채우고자 하는 기대도 담겨있을 겁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차를 통해 느슨하지만 짙은 대화를 나누는 지혜 님의 찻자리, 그 자리를 이끌어 가는 팽주 지혜 님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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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茶會友 以壺爲媒 이차회우 이호위매 | 차를 나누며 친구를 만나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차는 참 묘해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실 때, 커피는 만드는 사람의 손에서 떠나는 순간부터는 만드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이 더 이상 교류할 게 없잖아요. 근데 차는 달라요. 좋은 공간에서 비싼 차를 마셔도 팽주와의 감정 교류가 없으면 굳이 다시 그 찻자리를 안 가게 되거든요. 저도 차는 왜 이런 독특한 문화라고 할까, 분위기가 있는 걸까 항상 궁금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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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답을 얼마 전에 알게 됐어요. 계절차회를 준비하면서 한 홍콩 친구와 대화하다가 그 친구가 알려준 거예요. ‘차(茶)’라는 한자를 보면 풀과 나무 사이에 사람이 있잖아요. 우리가 아무리 좋은 차를 준비하고 다구를 깨끗하게 해도 결국 차를 우려주는 사람의 마음이 깨끗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 차가 좋을 수 없다는 거죠. 결국 ‘차'는 사람의 마음인 거예요.
계절차회에서 제가 직접 마시는 차를 가져가니까 그 친구가 홍콩에서 차를 많이 보내주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고맙지만 미안하고 부담스러워서 괜찮다고 사양하니 친구가 이런 말도 해주더라고요. "以茶會友 以壺爲媒 이차회우 이호위매." 이 말은 '이익을 구하지 않고 사람과 우정을 모으는 것이 차다. 차를 나누며 친구를 만나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뜻이에요. 이게 차의 본질이겠죠. 차를 하며 늘 마음에 담는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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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찻자리를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어요. 저는 차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나누는 감정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사람이에요. 계절차회도 그런 마음으로 준비하고 있고요. 제가 직접 경험하고 특별히 인상 깊었던 차로 스토리를 준비하고, 전날에는 차회에 쓸 다구에 꼭 차를 내려 시음해 봐요. 차는 아주 민감해서 차와 다구가 맞지 않으면 차 맛이 확연히 달라지거든요. 정성이 없으면 좋은 맛을 낼 수 없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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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iew
햇차로 시작한 우리의 작은 차회는 여름에 잘 어울리는 백차를 마시며 점점 농밀해져 갑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이제 막 얼굴을 익히고 이름을 나눈 사이인데 찻잎이 침잠하듯 깊은 속내로 흐르는 것 같았어요. ‘차취(茶醉)’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듯합니다. 대화를 나눌수록 지혜 님은 차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만큼의 투명한 열정이 없다면, 그처럼 섬세하고 여린 마음이 없다면 이토록 진심을 다할 수 없을 거라고요.
무엇보다 내 그릇의 넘침과 부족함을 알고 내 안의 끓는 점과 식는 점을 느끼는 진정한 다인(茶人)으로 보였습니다. 다도와 다례만 안다고 다인이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보다는 차의 본질, 그것에 가까이하고자 애를 쓰는 자체가 다인의 마음가짐이라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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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저 이 질문 생각해 본 적 있어요. 저는 끝까지 저를 알아가기 위해 사는 것 같아요. 나를 알아가면서 내가 행복한 것을 찾아 나한테 해주는 것, 그게 제 의무라고 생각해요. 결국 나를 알아가며 모자이크하듯 하나씩 붙이고 채워나가는 게 삶이 아닐까요. 내가 내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가 늘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계속 저를 알아가는 것, 그게 제 삶의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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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view
찻잎이 향하는 궁극의 지점은 심연 어느 한 곳. 나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그곳에 닿아 때로는 우리를 치유하며 때로는 취하게 하는 영검의 차. 그토록 여린 새순도 깊은 차가 되듯, 참새의 혀만치 여린 마음 구석도 정성과 진심이 닿는다면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아, 정정해야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쩌면 새순 같은 마음도 괜찮을 것 같네요. 삶이 고목으로 울창하기만 하면 아침 햇살 같은 행복은 스며들지 못할 테니까요.
지혜 님은 이날 우리만의 작은 찻자리를 마무리하고 하동으로 내려간다고 전했습니다. 톡톡톡 수확의 빗소리로 지혜 님의 찻잔이 벌써 가득해졌겠네요. 한소끔 더 깊어질 지혜 님의 차 세계를 기다리며 the seochon 입하의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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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라운지 계절차회
서울시 공공한옥 서촌라운지에서는 올 한 해 동안 계절마다 차를 즐길 수 있는 ‘계절차회’ 프로그램이 진행됩니다. 오늘의 인터뷰이 지혜 님이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죠. 계절차회는 차(茶)를 품평하고 배우기보다 차(茶)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캐주얼한 찻 자리를 지향하고 있답니다.
경남 하동의 차, 여름의 어울리는 차, 꽃의 차 등 매달 계절에 맞춰 다양한 차 리스트를 기획하여 1시간 반 정도 차에 담긴 이야기와 각자의 경험을 나누고 있어요.
서촌라운지 계절차회는 무료 운영되어, 누구나 편하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예약은 네이버 예약으로 진행되며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 오전 11시에 다음 달 찻자리 프로그램 예약창이 오픈되니 자세한 사항은 서촌라운지 인스타그램을 참고해 보세요!
🔍 서촌라운지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 27-4
⏰ 화 13:00-19:00, 수-일 11:00-19:00, 월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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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다함께차차차茶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5월은 ‘차茶덕후’들에게 정말 바쁜 시기입니다. 차 엑스포, 차 박람회, 햇차 시즌, 공예주간 등 차茶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즐길 수 있는 시기이죠.
서촌에도 때마침 입하에 차를 즐길 수 있는 재미난 프로그램이 있더라고요. 바로, 통의동 보안1942에서 운영하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입니다.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은 2024 공예주간의 일환으로, 전국 각지의 공예 작가, 차 문화 활동가, 차 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펼치는 새로운 세대를 위한 차 공예 페어입니다. 올해는 다양한 감각의 46팀이 참가하여 어느 때보다 풍성한 페스티벌이 펼쳐진다고 하니 입하의 끝 무렵, 서촌에서 차茶의 즐거움을 만끽해 보세요!
🔍크래프트 티 페스티벌
🗓 2024. 05. 17 (금) - 05. 19 (일)
📍보안1942 전관 (서울시 종로구 효자로 33)
⏰ 운영시간: 12:00-18:00 🔖 일반예매: 7,000원
다함께차차차 보안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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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chon 8호는 5월 21일 소만(小滿)에
님을 찾아갑니다.
입하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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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올 준비
김태운
색이 삶보다 많아지고 냄새는 골목골목 소란스러워
토끼라는 이름을 가진 육지 거북이 일광욕을 즐기러 집을 나서면 개는 짖고 사람들은 웃는다
거품으로 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는 꿈 평온하게 속속들이 느끼고
소곤소곤 잠든다 아니, 땀에 푹 젖어 푸르르 깨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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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eochon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포토그래퍼 김민하: "Live and let live."
👋'봄' 에디터 박현아: "사랑하기 위해 질문하고 사유합니다."
👋'여름' 에디터: 최연우: "사랑으로 쌓은 마음과 문장을 나눕니다."
👋'가을' 에디터/디자이너 조아림: "즐거움과 따뜻함을 채우며 삽니다."
👋 서촌이웃 김태운 님: "서촌에서 시 쓰고 밥 먹고 잠드는 김태운입니다."
👋서촌이웃 박채운 님: "서촌이 그저 좋아 살게된, 산책과 붓글씨를 즐기는 박채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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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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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휴먼 콘텐츠 <로컬루트>
사람의 가치, 로컬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 로컬. the seoc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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