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쌓아 올린 우리만의 성

결혼 전 아내에게 청혼하면서 우리만의 성을 만들자고 말했어요. 아무런 도움도 받지 않고,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하나하나 쌓아 올려서 집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집 이름도 자연스럽게 저희 둘의 이름을 따서 짓게 되었어요. 아내 그레이스(은혜)의 ‘은’과 제 이름 상현의 ‘현’을 합쳐 ‘은현재’라는 이름을 만들었죠.

이건 상량문(上樑文)이라고 해요. 상량은 한옥의 기둥과 대들보가 다 설치된 뒤에 집 가장 높은 위치에 마룻대를 올리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상량문은 집이 거의 완성되어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는 의미로 집이 지어진 날, 주인 이름, 집 이름, 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써놓는 글씨판이에요. 저희 상량문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어요. ‘입주상량‘은 기둥을 세우고 들보를 올린다는 의미이고,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은 하늘 위에 세 가지 빛이 응하고 인간의 오복을 다 갖추라고 집안의 축복을 바라는 뜻이에요. 이렇듯 은현재는 단순한 집이 아닌 우리만의 성, 우리만의 세계를 쌓아 올린 것과 같아요.

사람 사는 것 같은 집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2년마다 이사 다니는 게 참 힘들었어요.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었을 뿐 그 이상의 역할도 없었고요. 그러던 중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목적으로 한옥을 처음 접하게 됐어요. 부부와 아기 두 명이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정말 사람 사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담벼락에 있는 낙서, 집 한쪽에 쌓여있는 책들이 살아 숨 쉬는듯한 따뜻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졌고, 바로 전세금을 빼서 그 집을 임대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된 거죠.

이야기를 펼치고 담아내는 집

한옥은 마당이 있어서 사람들이 모이기에 좋은 공간이에요. 친구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집이 될 수도 있고 결혼식, 돌잔치, 공연, 전시장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요.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한옥은 집을 활용하는 방식에 제약이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어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옥이라는 공간에 담아 집과 자신이 어우러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이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한옥에 대한 애정을 키우다 보니 결국 이 한옥 집을 짓고 살게 된 거예요. 지금은 이 집에서 리추얼마인드 테라피 수업을 진행하기도 해요. 한옥에 살면서 집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다양한 매력을 느끼면서 살고 있는 듯해요.

✍️Editor’s view 

여러분에게도 묻고 싶어요. 집에서 나와 가장 닮아있는 공간은 어디인가요? 아마 그곳은 나의 손길이 가장 많이 닿는 곳이 아닐까 합니다. 마음이 있는 곳으로 내 시선과 손을 뻗는 법이니까요. 상현 님은 은현재에서 본인과 가장 닮아있는 공간으로 수납장을 골랐는데요. 상현 님의 답을 들으니 ‘집을 채우는 것은 나를 채우는 것’이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반대로, 집을 비우는 것은 나를 비우는 것이기도 하겠죠. 집안일이란 무엇을 채우고 비울지 결정하는 과정이 아닐까요?

필요한 것만 남은 삶

저는 집에서 쉴 때 툇마루에 앉아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해요. 또 무엇이든 정리하고 비우려고 하는 편인데 이런 제 성격이 저희 집에 많이 묻어있어요. 특히 저희 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바로 이 수납장이에요. 비어있는 공간은 필요한 곳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마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을 먼저 깨끗이 청소해야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요. 이렇게 비워놓기 위해서 수납장을 공들여 만들었는데 공간과 조화롭게 녹아들기도 했고 저를 많이 닮아있어요. 아내와 가장 닮은 공간은 바로 수납장 '안'이에요. 생활감이 묻어 있는 현실이죠.(웃음) 저희가 같이 살아가는 것처럼 비우고 또 채우는 것이 공존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집에 새겨진 나다움

개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는 그 집주인의 취향과 개성이 많이 묻어 있어요. 마치 집만 봐도 그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오랫동안 머무는 사람의 특성이 공간에 반영되는 거죠. 나다운 집을 만들어 가기 위해선 우선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또 나를 알아가려면 뭐라도 해야 하고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서는 나를 알 수 없어요. 저는 취미로 목공을 하기도 하고, 공연이나 여러 일을 하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것 같아요. 일을 할 때도 단순히 업무를 처리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무언가를 기획하며 나를 알아갔고요. 이렇게 알게 된 나만의 색채가 집에 녹아드는 게 아닐까 해요. 나만의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끊임없이 나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the seochon 6호는 4월 19일 곡우(穀雨)에

님을 찾아갑니다.

청명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그럼 돌아오는 절기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