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길어졌습니다. 계절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더니 달력을 보니 놀랍게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이 다가왔더라고요. 낮과 밤이 균형을 이뤄 조화를 이루듯 우리 삶에도 조화가 필요한 듯합니다. 삶과 일, 자연과 인간의 관계가 그렇겠죠. the seochon 4호에서는 바로 이러한 조화를 이루는 사람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바로 지속가능미식연구소 아워플래닛(our palnEAT) 대표 장민영 님입니다. 민영 님과 함께 ‘제철 음식이 만드는 지속 가능한 관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한국인의 밥상> 취재 작가로 활약하던 장민영 대표는 공동 창업자 김태윤 셰프와 함께 아워플래닛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워플래닛은 음식을 통해 사람과 자연이 서로 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말합니다. 아워플래닛이 운영하는 플래닛 랩은 서촌 수성동 계곡 아래에 위치해 있는데요. 민영 님은 이곳 플래닛 랩에서 다이닝 팝업, 쿠킹클래스, 워크숍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 돌물, 사람 모두를 생각하는 미식생활의 가치를 전하고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가치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이상이에요. 우리 모두가 속한 세상을 생각하고 지속 가능한 미식 생활을 만들고 싶어요. 새로운 가치와 세상을 알게 되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게 되면 맛이 달라지고,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변하게 돼요. 내가 속한 세상 그 너머의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아워플래닛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Editor’s view 

달력이 아닌 계절을 보며 살아가면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보입니다. 마치 옛 선조들이 봄이 되면 본격적인 농사를 시작하기 전 일꾼들에게 맛있는 음식과 쉼을 선물하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그 해 수확한 햇곡식을 어른들께 대접했던 것처럼요. 민영 님은 바로 이러한 24절기를 가장 잘 즐기며 살아갑니다. 자연과 하나 되어 주어진 순간을 만끽하고, 계절에 따라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잘 아는 사람이지요. 자연을 둘러싼 민영 님의 삶은 제철을 제때에 즐기며 잘 살아가는 법, 자연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알려줍니다.

✍️Editor’s view 

얼마 전 글쓰기 모임에서 ‘친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모임원이 “넌 어떤 친구를 두고 싶어?”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질문에 저는 “반찬 나눠먹는 친구”라고 답했습니다. 다소 생뚱맞게 들렸는지 모임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죠. 하지만 제가 말하는 ‘반찬 나눠 먹는 친구’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의 시간과 정성을 써서 누군가를 돌볼 줄 아는 친구, 제철의 가장 좋은 것을 알아보는 좋은 안목과 여유를 가진 친구,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기억하는 세심한 친구, 일상과 자연의 소중함을 아는 친구. 반찬 한 접시에도 수많은 마음과 관계가 녹아있지요. 민영 님은 이보다 더 깊고 넓은 관계를 음식에 담아냅니다. 자연과 인간, 생산자와 소비자, 동물과 사람, 도시와 지역. 이들의 지속 가능성을 생각하면서요.

음식으로 풀어내는 관계
인터뷰가 끝나면 저는 바로 고향 경남 거창으로 가요. 생산자를 만나 이 시기에 자연에서 어떤 식재료를 얻을 수 있는지 확인하려고요. 생산자를 만나는 일은 단순히 식재료를 얻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잇는 과정이에요.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일하면서 쌓은 인연들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이 외에도 취재, 지역 어른들의 소개, 우연한 만남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소중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죠. 저는 이러한 관계에서 얻은 경험과 이야기를 소비자들에게 음식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아워플래닛은 지속 가능한 미식을 이야기하는 곳이에요. 많은 분들이 지속 가능성을 친환경과 동일시하지만, 저희에게 지속 가능성은 ‘관계’예요. 자연과 인간, 생산자와 소비자, 동물과 사람, 도시와 지역. 이러한 관계를 끈끈하게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음식은 이 관계를 풀어내는 매개체가 되는 것이고요.

생산자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는 식재료
직접 생산자의 얼굴을 마주한 뒤에 먹는 음식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요. 아워플래닛은 사람들과 함께 생산자를 만나는 필드트립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디에서, 어떻게 키워졌는지 알면 더욱 신뢰하는 마음으로 먹고 생산자의 수고를 떠올리게 돼요. 마트에서 무심코 집어 든 식재료가 자연과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걸 깊이 깨닫게 되죠. 그러면 자연재해로 인해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못난이 채소를 사게 되어도 너그러이 이해하게 돼요. 이런 경험들은 자연의 힘과 인간의 한계를 이해하게 만드는 거겠죠. 그래서 저에겐 생산자를 만나러 지역에 찾아가는 일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이에요.

반찬마켓: 잊힌 반찬과 경험
아워플래닛 반찬마켓은 잊힌 제철 반찬들을 소개해요. 제가 <한국인의 밥상> 작가로 일할 때 할머니들이 해주시던 옛날 반찬 같은 것들이요. 지역에서는 흔히 먹는 것이지만 도시 사람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옛날 반찬들이 정말 많아요. 반찬을 잊는다는 것은 그 반찬에 쓰이는 식재료 또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반찬마켓을 통해서 잊힌 식재료, 사람들과 나누어 먹고 교류하던 잊힌 옛 경험을 전하고 싶어요. 반찬마켓에서는 재밌는 광경이 펼쳐져요. 집안마다 다른 반찬통, 보자기, 쟁반에 반찬을 담으면서 손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게 굉장한 교감이 되더라고요. 우엉김치 하나 담아주면서 더 맛있게 먹는 법, 식재료를 키운 농부님 이야기를 하니 더 의미가 커요.

저는 사는 게 너무 재밌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누리고 싶어서, 내 하루가 즐겁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하고 있어요. 환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 하루를 즐겁고 맛있게 살아냈으면 좋겠어요. 내 하루를 재밌게 살다 보면 내 주변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고 믿어요.

🌱아워플래닛: 제철의 맛을 나의 밥상에서 만나볼 수 있는 아워플래닛의 계절 프로젝트

모든 것이 빠르고 정확하게 원하는 대로 얻어야 하는 요즘, 서촌에 자연의 시간에 맞춰 땅에서 자라 오르는 온전한 제철 식재료로 한 끼의 밥상을 완성시키는 아워플래닛의 ‘반찬 프로젝트’를 소개한다.

한 달에 한 번, 식탁 위에 계절을 펼치고, 지혜를 담았던 어머니들의 맛을 나누고, 기록하며 이어나가는 ‘반찬 프로젝트’를 통해 아워플래닛의 곳간을 활짝 연다. 개인이 준비한 반찬통에 원하는 종류와 양만큼 반찬을 사갈 수 있는 ‘반찬 마켓’과 지역의 맛을 담은 반찬과 계절 식재료로 구성한 ‘반찬 다이닝’은 ‘지역의 잊혀 가는 맛’과 ‘지속가능성’을 이어나가며 아워플래닛이 나누고 싶은 가치를 반찬을 통해 실천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지난 2월과 3월은 우수와 경칩 사이에 느낄 수 있었던 식재료를 통해 봄의 소식을 알렸고, 다가오는 4월은 겨우내 움트고 있던 뿌리에서 틔어 오른 봄나물의 향연을 맛볼 수 있다고 하니 벌써부터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소담한 반찬을 통해 그 땅의 계절과 기후, 식재료, 문화, 그리고 어머니들의 삶의 지혜까지 전하는 아워플래닛의 반찬프로젝트 알람이 울리면, 서촌 골목 곳곳에서 각기 각색의 반찬통을 들고 모두가 아워플래닛으로 향하는 상상을 떠올려본다.

📢 아워플래닛 <다이닝&마켓: 반, 찬>

🗓 2024년 4월 5일 (금) ~ 7일 (일)
📍플래닛 랩: 서울시 종로구 옥인길 71 2층

*자세한 일정은 및 예약은 @ourplaneat 의
4월 반찬프로젝트 공지를 확인해주세요.

꽃이 피어날 때

                                                           김태운

밤과 낮은 닫힌 꽃봉오리를 꼭 맞잡고
양쪽에서 살살 잡아 당긴다
밤과 낮의 길이가 평등해질 때

꽃은 개운하게 기지개 켜듯 피어오른다

꽃이 금방 지는 듯 해도
낮과 밤은 얼마나 조마조마해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