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여거 사장 이승선 님 | 서촌 이웃커뮤니티 서밥모 | 서촌 혼밥혼술 ▪️ 절기 이야기: 또 다른 봄을 향해
▪️ 인터뷰: 여래여거 사장 이승선 님
▪️ 서촌의 시공간: 서촌 이웃 커뮤니티 | 서밥모
서촌 가게 | 서촌 혼밥혼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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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큰 추위’라는 뜻을 가진 대한(大寒)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겨울의 정점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하지만 대한의 진정한 의미는 겨울을 마무리하고 봄을 준비하는 전환점에 다다랐다는 것입니다. 유독 찬바람이 거세게 불고 거리가 눈으로 가득 뒤덮였던 소한을 지나, 조금은 누그러진 추위 속에서 하루빨리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한을 맞이하려 합니다.
더 서촌 스물네 번째 절기는 추운 날씨만큼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녹여줄 서촌의 심야 식당, 여래여거의 이승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승선 님은 외로움을 대하는 자세를 나누며, 그 외로움을 달래줄 여래여거만의 따스하고도 정겨움 넘치는 이야기를 지금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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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위안하며 보내는 시간
주 5일 동안 가게에서 일하며 온전히 일에만 집중하다 보니, 쉬는 이틀은 주로 혼자 보내는 편이에요. 그중 하루는 프렙 준비로 하루를 보내고, 나머지 하루는 가벼운 산책을 하러 나갈 때도 있고, 집에서 쉬며 소설이나 시를 읽으며 시간을 보내요. 특히 시는 자주 재독하는데, 심보선 시인의 ‘식후에 이별하다’를 즐겨 읽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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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이별하다
심보선
하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으니
이제 이별이다 그대여
고요한 풍경이 싫어졌다
아무리 휘저어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이를테면 수저 자국이 서서히 사라지는 흰죽 같은 것
그런 것들은 도무지 재미가 없다
거리는 식당 메뉴가 펼쳐졌다 접히듯 간결하게 낮밤을 바꾼다
나는 저기 번져오는 어둠 속으로 사라질테니
그대는 남아 환한 쪽으로 등 돌리고
열까지 세라
열까지 세고 뒤돌아보면
나를 집어삼킨 어둠의 잇몸
그대 유순한 광대뼈가 물컹 만져지리라
착한 그대여
내가 그대 심장을 정확히 겨누어 쏜 총알을
잘 익은 밥알로 잘도 받아먹는 그대여
선한 천성(天性)의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이를테면
내가 죽 한 그릇 뚝딱 비울 때까지 나를 바라보며
그대가 속으로 천천히 열까지 세는 소리
안 들려도 잘 들리는 소리
기어이 들리고야 마는 소리
단단한 이마를 뚫고 맘속의 독한 죽을 휘젓는 소리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먹다 만 흰죽이 밥이 되고 밥은 도로 쌀이 되어
하루하루가 풍년인데
일 년 내내 허기 가시지 않은
이상한 나라에 이상한 기근 같은 것이다
우리의 오랜 기담(奇談)은 이제 여기서 끝이 난다
착한 그대여
착한 그대여
아직도 그쪽의 풍경은 환한가
열을 셀 때까지 기어이 환한가
천만 억을 세어도 나의 폐허는 빛나지 않는데
그 질퍽한 어둠의 죽을 게워낼 줄 모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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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떠난 여행
보통 일주일 중에 이틀도 온전히 못 쉬어서 평소엔 여행을 갈 엄두를 못 냈거든요. 최근에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었던 양산 통도사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어요. 솔직히 1박 2일 동안 무언가를 보고 느끼기에 부족한 시간이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번 여행을 통해 충분히 긴 호흡의 여행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15년 전, 조용한 암자에서 한 달간 머물며 스님 두 분을 알게 된 적이 있어요. 그중 한 분은 입적하셨고, 다른 한 분은 젊은 스님이셨어요. 젊은 스님과 깊이 교류하며 정이 들었는데, 스님은 당시 핸드폰이 없어 연락을 이어갈 방법이 없었죠. 헤어지기 전날, 스님께서 통도사에서 공부하실 계획이라고 말씀해주셨고, 언젠가 스님이 계신 그곳을 찾아가겠다고 다짐했어요.
15년이 지난 후에야 통도사를 찾았고 스님을 만날 기대는 내려놓은 채 그곳을 거닐었어요. 스님과의 재회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주변 사람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그리고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이 평안하길 기도하고 돌아왔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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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머무르는 동안
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보지 않아요. 외로움은 평생 지니고 가야 할 감정인데 너무 짐처럼 느껴진다면 그것만큼 슬픈 건 없을 거예요. 외로움이란 인생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당연한 감정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거나 여행을 하거나 술을 한잔하면서 깨닫게 되는 또 다른 감정과 생각들을 통해 성숙해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어쩌면 외로움이라는 건 내 곁에 충분히, 오래 머물수록 제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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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의 외로움도 잊게 만드는 곳
여래여거에 오시는 손님들 중 열 분 중 두 분 정도는 혼자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저도 혼밥의 처량함을 잘 알다 보니 여기서 식사하시는 동안만이라도 심심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요. 그래서 혼자 오신 분들께는 가끔 아이스브레이킹 질문을 던지곤 해요. 주로 “어떤 일 하세요?”라고 묻거나, 손님들이 책이나 화분 같은 걸 유심히 보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분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나눠요.
저는 단순히 음식만 내어드리는 주인장이 아니라, 이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의 인테리어, 그리고 사람 간의 따뜻한 온기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주인장으로 기억되길 바라죠. 여래여거가 언제나 참새 방앗간처럼 편안하고, 슬리퍼를 끌고 와도 부담 없이 들를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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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가는 가게의 비결
여래여거는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길 가다 우연히 들어오는 경우는 정말 드물어요. 대부분 예약을 하고 오시죠. 그래서 손님들이 재방문을 하게끔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껴요. 제가 장사하는 사람으로서 꼭 지키는 두 가지 철칙이 있어요. 첫 번째는 적당한 이윤만 남기자는 거예요. 욕심을 부리면 손님들도 알아차리고, 저도 떳떳하지 못할 것 같아서요. 두 번째는 부족하지 않게 주자는 거예요.
장사를 시작할 때 조언을 구한 사장님이 있었어요. 거의 20년 가까이 술집을 운영하셨던 분인데, 그분에게 장사를 오래 하는 비결이 무엇인지 물어봤어요. 그분은 돈을 많이 벌거나 명품을 사는 타입은 아니었어요. 늘 후줄근하게 입고 다니셨지만, 한 곳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셨다는 게 정말 대단했어요. 그래서 그분이 해주셨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주인장의 손이 크면 절대 망할 일이 없다. 대신 부자는 될 수 없지만, 오래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말이었어요. 그분이 진짜 손이 크셨고, 저도 그분 가게에서 거의 10년 가까이 단골로 지냈어요. 주인장이 표현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느낄 수 있도록 퀄리티 좋은 음식을 넉넉히 제공하면 그 가게는 오래 갈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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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왜 살아야 하는지 종종 생각하긴 하는데, 그 이유를 딱히 찾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언젠가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겠지만, 이왕 태어난 거라면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며 살고 싶어요. '여래여거'라는 곳이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사람과, 따뜻한 말을 건네주는 곳이 있구나"라고 기억되는 공간이 되길 바라요. 손님들이 내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는 공간, 그들과 삶의 희노애락을 나누는 게 제 즐거움이에요. 이 일을 하면서 몸이 힘들긴 하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좋은 사람들이 함께 해주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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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손님들과는 가게라는 명분을 통해 관계를 형성했고, 그들의 개인적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좋은 기분을 주고 받았던 기억을 근거로 서로를 무한히 신뢰하고 응원합니다. 삶의 태도는 곧 사람에 대한 태도와도 같습니다. 삶을 소중히 여기듯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삶처럼 타인의 삶 또한 멀리 내다보면서, 서로의 삶을 씨줄과 날줄 삼아 시간의 그물 속에서 아름답게 엮어나가면 좋겠습니다.
박정수, 『좋은 기분』 中
여래여거의 오랜 단골손님들은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여기만큼은 정말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만 데리고 와서, 맛있는 음식과 술을 함께 나누고 싶은 곳이에요.” 이 한마디는 여래여거가 단골손님들에게 어떤 공간인지 그대로 보여줍니다. 혼자 와도, 둘이 와도, 여럿이 와도 좋은 이곳에서 좋은 기분과 음식을 나누다 보면, 창밖의 추운 겨울도 잠시 잊게 되겠지요.
긴 터널 같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또 봄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당신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와 따스한 응원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멀고도 가까운 당신께,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지만 보내주신 응원과 격려가 있었기에 더 서촌의 스물네 번째 절기 이야기가 무사히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다가올 봄처럼 따스하고 환한 나날들이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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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이웃 커뮤니티 | 서밥모 겨울의 마지막 절기, 대한(大寒). 차디찬 바람 속에서도 꿋꿋이 서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떠올립니다. 외로움은 인간의 조건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계절이죠. 하지만 묘하게도 그런 외로움 속에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라는 단어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난 그 그리움이, 때로는 공동체를 만들고 커뮤니티를 이루게 하니까요. 서로 공감하고 위안하며, 마음의 추위를 따스한 온기로 채우는 힘.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촌에도 이런 온기를 전하는 특별한 커뮤니티가 있답니다. 바로 서촌 이웃 커뮤니티, ‘서밥모’입니다. 2017년, ‘서촌에서 밥 먹는 모임’으로 시작된 서밥모는 처음엔 단순히 밥을 함께 먹고 일상을 나누는 작은 모임이었어요. 하지만 8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서촌 주민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온라인 커뮤니티(오픈단톡방)로 자리 잡았지요. 예전처럼 밥을 함께 나누는 건 아니지만, 서촌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들이 서밥모를 통해 오가고 있어요. 물건 나눔부터 생활 꿀팁, 맛집 추천까지 서촌살이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서촌 생활의 작은 지침서 같은 존재가 된 거죠.
지금 서밥모에는 약 600명의 서촌 주민과 관계 인구가 함께하고 있어요. 느슨하면서도 끈끈하게 이어진 이 커뮤니티는 그 자체로 믿음직한 삶의 네트워크가 되고 있답니다. 예전에 어떤 이웃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혼자 서촌에 살고 있지만, 무슨 일이 생겨 서밥모에 이야기하면 누군가 바로 달려와 도와줄 것 같아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로와 용기가 됐는지 몰라요. 우리는 모두 각자의 외로움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그래도 일상의 소소한 순간 속에서 이러한 따뜻한 공감과 연대의 경험이 쌓여가는 덕분에 오늘도 힘을 내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오늘의 서촌을 나누며,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서촌살이의 즐거움이 살며시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서촌은 오늘 어떠한가요?” 📍<서밥모: 서촌 이웃 커뮤니티> 참여하기(클릭) *스팸방지를 위해 참여코드 입력 후에 입장이 가능합니다! 참여코드: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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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가게 | 서촌 혼밥혼술
혼밥과 혼술은 한때 외로움의 대명사처럼 여겨졌지만, 요즘엔 주체적인 삶의 상징으로 떠오르고 있죠. 서밥모에서도 혼밥과 혼술에 관한 질문들이 자주 오갔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래서 이번 서촌 가게는 서촌에서 혼자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혼밥, 혼술 맛집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혼자만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며 겨울의 서촌을 만끽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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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혼밥 맛집 📍동혁이네_필운동 106 📍밥+_누하동 77-15 📍쉬는시간_통인동 72 📍옥이네밥집포차_통의동 67-2 2층 📍서촌 임식당_내자동 29-2 📍함박식당_필운동 101-2 📍히타토제면소_누상동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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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촌 혼술 맛집 📍라그라스_누하동 77-7
📍바 지로_누하동 260 B1
📍뽐_통인동 135-4
📍참제철_적선동 25 4층
📍철판남_필운동 15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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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바 지로 네이버 플레이스 글 | 김민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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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 인사는 김태운 님의 시와 함께 끝마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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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이 깊을수록
김태운
더 캄캄하고 차갑게 식어 가는 밤 빛과 불은 하나둘씩 꺼지고 어지간한 것들은 얼어 붙는데 꽃망울은 삼삼오오 켜져 벌써 겨울을 떠나보낼 준비로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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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오늘의 the seochon은 어땠나요?
좋았다면 친구에게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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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휴먼 콘텐츠 <더 서촌>
살고 싶은 로컬, 살고 싶은 삶을 발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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