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은 오래전부터 많은 문화 예술가들이 살았던 곳이죠. 지금 우리가 서촌에서 향유하는 풍요로운 문화는 과거부터 흐르는 서촌의 문화적, 예술적 유산을 자양분 삼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좁은 골목 오래된 집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누하동에도 그 흔적이 남아있는데요. 수묵화의 거장이자 20세기 한국화의 독자적인 청전 양식을 구축했던 청전 이상범의 가옥과 화실입니다.

1930년대 도시형으로 개량된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이상범 가옥은 1972년 이상범 화백이 작고할 때까지 거주한 곳입니다. 가옥을 들어가 보면 가장 먼저 '樓下洞天(누하동천)'이라는 현판을 볼 수 있는데요. 여기에서 '洞天(동천)'은 '신선이 사는 경치 좋은 곳'을 뜻한다고 해요. 당호만 봐도 이상범 화백이 누하동과 그의 가옥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죠. 이 가옥은 근대 도시 한옥의 전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딱 한 곳,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는 마루인 찬마루는 도시 한옥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상범 가옥만의 특징이라고 해요. 가옥과 화실에는 이상범 화백이 사용했던 가구와 미술 도구 등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요. 이상범 가옥과 화실은 근대 문화 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어요.

이상범 화백은 누하동 가옥과 가옥 바로 옆에 지은 화실 '청전화숙'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썼어요. 우리에게 익숙한 남정 박노수 화백이 그에게 가르침을 받았죠. 이상범 화백은 동아일보의 미술부 기자로 일하던 당시, 베를린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기사에 기재하며 체육부 기자의 권유에 동의하여 일장기를 지운 일화로 유명해요. 그러나 결국 친일행위에 가담해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등재되어 엇갈린 평가를 받는 인물이기도 하죠. 파란만장한 생을 살며 우리나라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청전 이상범 화백, 여러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